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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없이 말린 밥, 대변도 수거…‘백두대간 700㎞’ 50일 종주기 [호모 트레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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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백두대간 종주 첫 이야기

호모 트레커스

‘호모 트레커스’ 김영주 기자가 새해를 맞아 백두대간 700㎞ 종주에 나섰습니다. 50일간 마루금(능선)을 걷고 산에서 자며 현장에서 씁니다. 겨울 종주는 가장 위험이 크지만 동식물에게 부담을 가장 덜 줍니다. 불 없이 말린 밥을 먹고 대변은 응고제를 써 봉투에 담아 수거합니다. 법(비법정 탐방로 금지)을 지키고 자연을 지키며 한반도의 허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지난 4일 조침령(鳥寢嶺)을 향해 걷는 김미곤 대장. 조침령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경계다. 김영주 기자

지난 4일 조침령(鳥寢嶺)을 향해 걷는 김미곤 대장. 조침령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경계다. 김영주 기자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는 목적이 마루금(능선)을 기록하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뼘도 건너뛸 수 없었습니다. 비탐방 구간을 걷지 않으면 완전한 종주라고 할 수도 없고요.” 조지종, 『두 발로 쓴 백두대간 종주 일기(2019)』 저자.

“요즘 등산객들은 100대 명산 인증하듯, 백두대간 종주도 경쟁하듯 해요. 탐방안전·자연보전을 위해 정한 출입금지 구간도 지키지 않으면서요. 산을 정복하듯 자신의 체력을 뽐내고, 그리고 그걸 SNS에 자랑하고.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공우석, 『숲이 사라질 때(2021)』 저자.

한반도의 큰 산줄기 백두대간은 첨예한 논란의 공간이다. 백두대간을 온전히 걷고 싶은 이들과 이를 걱정하고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다.

김영주 기자

김영주 기자

백두대간은 백두산(2749m)에서 지리산(1915m)까지 이어지는 1400㎞의 능선이다. 단순한 산줄기가 아닌 민족의 영지(靈地)이자 한반도 동식물 자원의 보고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1980년대에 등장해 90년대부터 일반에 알려지면서 백두대간은 레저의 영역에 들어왔다. 최근 백두대간 남쪽(진부령~지리산) 700㎞를 걷는 종주자가 크게 늘었다. MZ세대들이 가세했고 해외 장거리 하이킹을 경험한 이들도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했거나 종주에 나선 이들은 6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비법정 탐방로(비탐)’를 둘러싼 국립공원공단과 종주자들의 숨바꼭질은 대중화의 귀결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산림·동식물 보호와 탐방 안정성을 위해 일부 구간 진입을 금한다. 하지만 이 구간이 전체의 10분의 1(약 80㎞)이 넘고 설악산국립공원에선 금지 구간이 29㎞로 허가 구간(18㎞)보다 길다보니 갑론을박이 촉발된다. 그러나 산악계에서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2021년 일시종주를 한 김채울(28)씨는 “걷고 싶다고 금지된 길을 걷는 것이 옳은 일일까 생각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킬 건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백두대간과 13정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림청]

백두대간과 13정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림청]

백두대간은 해외 유명 트레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미국 3대 트레일(PCT·CDT·AT)을 모두 걸어본 양희종(39)씨는 “대간을 종주하면서 운해(雲海)를 수시로 마주하게 돼 놀라웠다”며 “외국인들도 한국의 장거리 트레일을 궁금해하지만 우리도 찾긴 힘든 백두대간의 우회로를 외국인이 찾아 걷기는 여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최근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를 완주한 남난희(67)씨는 “외국 트레일은 인공적이지만 백두대간은 마루금을 잇는 천연의 길”이라며 “제대로 알린다면 세계적 트레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호모 트레커스’는 이달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 마루금 700㎞를 직접 걷는다. 산악 전문지 등이 40~50개 구간 종주를 연재한 적 있지만, 일시종주를 현장에서 전하는 건 언론사 최초다. 취재팀은 2018년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김미곤 대장과 김영주 호모 트레커스 담당 기자로 꾸려졌다. 김 대장은 지난해 5월 네팔 히말라야 푸캉(6694m)을 세계 최초로 등정했다. 기자는 엄홍길 대장의 로체샤르 원정대 등에 동행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겨울 일시종주는 마루금을 찾기 힘들고, 고립이나 조난 우려도 있어 어렵다. 그럼에도 겨울을 택한 건 생태계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다. 공우석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 소장은 “겨울 걷기는 동식물에게 부담이 적고 마루금 훼손도 덜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화식(火食)을 피하고 알파미(밥에서 수분을 빼 말린 것)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응고제와 봉투를 이용해 대변을 수거하는 등 최대한 LNT(Leave No Trace, 흔적 남기지 않기)를 실천한다.

비법정 탐방로는 반드시 우회한다. 마루금이 끊긴 지점에서 내려와 길이 재개된 곳에서 다시 오르는 비탐 구간 우회는 직진보다 힘들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김채울(28)씨는 “비탐 구간 우회로를 찾고 일정을 세우는 데 (다른 길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며 “속리산 제수기재~장성봉 구간에선 마루금 800m를 걷기 위해 15㎞를 우회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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