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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24조에 이른 ‘스텔스 세금’ 법정부담금 전면개편 시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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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국회 통제, 조세 저항 없던 손쉬운 재정 충당 수단

목적세 등 다른 부과체계 마련, 총량제도 검토를

정부가 24조원에 이르는 법정부담금의 전면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1961년 도입된 뒤 63년 만이다. ‘준조세’ 성격의 법정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률에 따라 국민과 기업 등에 부과하는 금전 지급 의무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도록 91개 법정부담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경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금인 듯 세금 아닌 세금 같은’ 법정부담금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일상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영화관에 가면 입장권 가액의 3%를 부담금으로 낸다. 담배에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한 갑당 840원)이 부과된다. 심지어 껌값에는 폐기물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91개 법정부담금을 통해 정부가 올해 거둬들일 돈만 24조6157억원으로 예상된다. 2002년의 7조4000억원에서 20여 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시민·경제단체 등은 그동안 ‘스텔스 세금’인 법정부담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조세법률주의나 국회 통제 없이 거둬들일 수 있다 보니 명목과 이름을 자의적으로 바꿔가며 만들어진 부담금은 어느새 재정 충당 수단이 돼버렸다. 게다가 일반회계 대신 기금 또는 특별회계로 관리하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사업비 확보 수단으로 손쉽게 활용했다. 세금이 아닌 탓에 국민의 조세 저항도 거세지 않았다. 하지만 늘어나는 부담금은 가계와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증세다. 팍팍한 살림살이와 만만찮은 경영 상황에 처한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사실 무분별한 부담금 신설이나 증설을 막고, 부과와 징수의 투명성을 높이려고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시행하면서 부담금 조치의 필요성을 3년마다 평가해 합리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폐지하게 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폐지된 부담금은 미미하고 20년 이상 유지되는 부담금은 67개로 전체의 74%에 이른다.

세수가 줄고 재정적자 폭이 커지는 상황에서 부담금의 유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반발로 부담금 구조조정이 어려웠던 이유다. 취약계층 지원과 공공사업 재원 마련이라는 취지에도 이제는 불필요한 법정부담금은 폐지해야 옳다. 불가피한 지출 재원이 필요하면 목적세나 과태료 등 다른 부과 체계를 마련하고 사회적 설득 작업을 통해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단순히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스텔스 세금’을 유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63년 만에 수술대에 오를 법정부담금이 환골탈태하려면 타당성이 떨어지는 부담금은 없애고 무분별한 부담금 증액이나 신설 등을 막기 위한 총량제도 검토할 만하다. 나랏돈 걷고 쓰는 일에는 올바르고 적절한 원칙과 기준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