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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향적인 대학 무전공 입학, 기초학문 보호 함께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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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1월 23일 서울대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교육개혁TF 1차 심포지엄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1월 23일 서울대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교육개혁TF 1차 심포지엄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학과 구분 없이 입학 후 2학년 때 전공 선택

교육 유연성 확보는 장점이나 전공 쏠림 우려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입시부터 주요 국립대와 수도권 사립대에서 ‘무전공 입학’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전공 구분 없이 대학 1학년으로 들어간 뒤 2학년에 올라가면서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대학 내 전공이나 학과의 오래된 칸막이를 허물고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대학 교육이 변화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해외에선 공학 전통이 강한 종합대학인 미국 MIT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MIT는 무전공으로 모집한 신입생이 2학년 때 100% 자율적으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보장한다. 사실 국내에서도 전혀 낯선 방식은 아니다. 이미 KAIST는 거의 모든 신입생을 대상으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도 자유전공학부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다만 전체 입학 정원의 1%도 안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의 경우 내년에는 정원의 20% 이상, 내후년에는 25% 이상 무전공 입학생을 선발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올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부터 제도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교육부가 대학에 무전공 선발을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다수의 대학이 예산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교육부의 방향을 따를 전망이다. 벌써 일부 대학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대와 한양대 등은 내부적으로 무전공 입학 인원을 300~400명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학 신입생의 무전공 선발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대학은 전공 교육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대나 기술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전공을 도입하거나 여러 학문을 융합한 전공을 개설하기가 쉬워진다. 기존 전공 가운데 시대에 뒤떨어진 분야는 과감하게 개편할 수도 있다. 학생 입장에선 전공 선택권을 보장받는 효과가 있다. 대학 간판만 바라보고 원치 않는 학과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학생들이 생기는 걸 방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무전공 선발로는 학생들이 졸업 후 고소득 일자리를 갖는 데 유리한 전공으로 몰리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이렇게 특정한 전공으로 과도하게 쏠렸을 때 대학 내 불균형이 심각해질 수 있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위기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대학 교육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기초학문이 지나치게 소외되지 않도록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이달이나 다음 달 중으로 구체적인 계획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면밀한 의견 수렴을 통해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