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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사일 고도화로 ‘한미동맹+α’ 시급…유엔사 중요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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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엔사 일본 후방기지 7곳 의미

한반도평화만들기가 주최한 ‘평화 오디세이’ 참석자들이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 내 수송기 C-130 앞에 섰다. 왼쪽부터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미군 관계자,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박홍규 고려대 교수, 김재신 전 주독일 대사, 이원덕 국민대 교수, 신정승 전 주중대사,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한반도평화만들기가 주최한 ‘평화 오디세이’ 참석자들이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 내 수송기 C-130 앞에 섰다. 왼쪽부터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미군 관계자,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박홍규 고려대 교수, 김재신 전 주독일 대사, 이원덕 국민대 교수, 신정승 전 주중대사,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 78돌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군사령부(유엔사)에 제공하는 후방기지 7곳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며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돼 있으며, 유엔사 후방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돼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유엔사 후방기지는 일본 본토 혼슈(本州)의 요코스카·요코타, 캠프 자마, 규슈(九州)의 사세보, 오키나와의 가데나·후텐마, 화이트비치 등 모두 7곳이다. 캠프 자마는 육군, 요코스카·사세보·화이트비치는 해군, 요코타·가데나는 공군, 후텐마는 해병대 기지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84호를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유엔사가 만들어졌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유엔군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자 미국 극동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유엔군 사령관도 겸직했다.

1951년 9월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면서 미국의 군정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는데, 이때 일본 주둔 유엔군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양해각서도 유엔사 측과 교환했다. 그리고 3년 뒤 유엔사 전력 제공국들과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6·25 참전국들이 일본의 군사기지를 전력 파견과 보급·병참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유엔사는 1957년 7월 1일 도쿄에서 서울로 이전하면서 일본 내 유엔사 기지 7곳을 관리하는 소규모 부대만 남겨뒀다. 이게 유엔사 후방기지다.

정승조 전 합참의장은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는 쿠웨이트에서 대기한 뒤 주둔지인 아르빌로 이동했고, 이후 보급도 쿠웨이트를 거쳐 받았다. 유엔사 후방기지가 결국 유사시 한반도의 쿠웨이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유엔사 후방기지가 한국의 안보에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 특히 한·일 안보협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로에 데쓰로(黒江哲郎) 전 일본 방위성 사무차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이 일본의 본토 안에 있는 것 자체가 굳건한 미·일 관계의 증거이자 상징”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2000년대 들어 대북 경제제재의 최전선으로서 유엔사 후방기지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로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안보를 위협하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통해 경제제재를 내렸다. 유엔은 공해 또는 항구에서 제재 위반 거래로 의심되는 선박을 검색해 금지 품목을 압류할 수 있는 권한을 회원국에 부여했다. 외교안보 당국자는 “1954년 SOFA 때문에 일본 정부에 사전에 통보하면 자유롭게 유엔사 후방기지를 쓸 수 있다”며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고, 중국이 유엔사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 들어선 유엔사는 1953년 정전 이후로도 한반도 안보에 계속 기여해 왔다. 그러나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작전통제권을 넘겨준 뒤 유엔사에 남겨진 임무는 정전협정 관리와 유사시를 대비한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운영 정도로 축소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은 2014년부터 잠자는 유엔사를 깨우는 ‘재활성화’에 들어갔다. 소속 인원도 70명 정도로 대폭 늘려 사령부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했다. 제2의 6·25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을 제외한 유엔사 회원국의 민간인 긴급후송 작전(NEO)을 유엔사가 전담할 계획도 있었다. 그 일환으로 유엔사는 당시 문재인 정부에 한국군의 영관급 참모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불허했고 유엔사로 파견되는 독일·덴마크 장교의 입국도 반대했다. 유엔사가 남북 교류·협력을 방해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유엔사와의 긴장 관계가 많이 풀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유엔사 장관 회담을 열어 유사시 재참전 의사를 다시 강조하면서 연합훈련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는 한국군 참모의 유엔사 파견도 추진할 계획이다.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 회장은 “북한에 핵이 없었을 때 유엔사는 정전협정만 유지하고, 북한의 위협은 한·미 동맹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하면서 ‘한·미 동맹+알파(α)’가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조야에선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를 한반도 너머로 넓히자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12월 미 하원에 제출된 인도·태평양 조약기구(IPTO) 설치 문제를 검토하는 태스크포스(TF) 구성 법안이 그 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유엔군 사령관은 지난해 9월 “한국·일본을 포함해 유엔사를 극동사령부로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미·중 대립 구도에서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결성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동아시아 안보 구도의 변화로 더 포괄적인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가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평화 오디세이=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동북아의 경제·평화 협력을 추구하며 2015년 첫 출항했다. 전·현직 외교관, 여야 정치인,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첫 출항에서 북·중 접경지대 1400㎞를 답사하고, 2016년 러시아 극동으로 출항해 동북아의 긴장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2023년에는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답사를 통해 평화 구축 방안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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