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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습격범 당적 미공개…경찰 내부선 "범행 동기 설명 골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피습한 60대 김모씨가 지난 4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출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피습한 60대 김모씨가 지난 4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 연제경찰서에서 출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습격한 김모(67)씨를 수사 중인 경찰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때도 김씨 당적은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당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가 범행 때 지녔던 ‘남기는 말’의 내용이 속속 알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글에 그의 범행동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분석한다.

경찰, 당적 공개 않을 듯

김씨 수사를 총괄하는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때도 김씨 당적엔 함구할 것으로 7일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2일 민주당 행사장에서 이 대표 지지자인 듯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안의 특성상 사건 직후부터 김씨가 실제로 민주당 지지자인지, 소속 정당은 있는지 등에 관심이 쏠렸다. 경찰은 지난 3일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압수수색해 김씨의 현재 당적과 과거 입ㆍ출당 이력 등을 파악했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수사기관이 당원명부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을 누설하면 3년 이하 징역ㆍ금고에 처하도록 한 정당법을 근거로 경찰은 그의 당적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입장은 이르면 오는 10일 예정된 최종 수사 결과 발표 때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경찰 내부에서는 “당적을 밝히지 않고 어떻게 범행 동기를 설명할지 골치”라는 말도 나온다. 법무법인 경천의 이민 대표변호사는 “대법원이나 하급심에서도 해당 정당법 위반 판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사문화된 법”이라며 “이미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퍼져 사회적 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수사기관이 정확히 밝혀 (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해당 법령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남기는 말’에 범행 핵심동기 드러나”

김씨가 미리 작성해 범행 당시 지니고 있던 ‘남기는 말’의 내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글엔 부동산ㆍ대북 외교 등 불만 이외에도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4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이송되던 중 이 대표 공격 이유를 묻는 말에 “변명문(남기는 말)을 참고해달라”고 했다.

지난 1일 봉하마을에서 이재명 대표 습격범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범행 때처럼 오른손을 강하게 휘두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지난 1일 봉하마을에서 이재명 대표 습격범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범행 때처럼 오른손을 강하게 휘두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배상훈(前 우석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는 “이 글에 핵심 범행동기가 담겼다”고 봤다. 그는 “남기는 말에는 김씨의 신념이 담겨있다. 망상에 사로잡힌 그의 머릿속에서 이 범행은 일종의 ‘의거’였다. 남기는 말을 범행 직후 알려지게 될 ‘선언문’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6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이 대표 일정을 따라다녔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된다. 흉기도 이 무렵 구입했다. 이에 대해 배 프로파일러는 “(일정을 따라다닌 건)탐색이기도 하지만, 틈만 났다면 세 번째나 네 번째 일정 때도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일 오전 흉기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원해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뉴스1

지난 4일 오전 흉기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입원해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뉴스1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미리 써서 품에 지닌 글은 ‘선언문’이자 범행 동인으로 보인다”며 “글 내용에서는 극단적인 테러 공격자와 비슷한 사고 구조가 읽힌다”고 했다.

지난 1일 봉하마을에서 김씨로 보이는 인물이 오른손을 휘두르며 범행을 연습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된 데 대해 이 교수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연습하며 범행에 임했다. 흉기를 개조한 건 ‘범행에 반드시 성공해 치명상을 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2019년 뉴질랜드, 1980~90년대 미국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 사건 때도 범인이 매니페스토(선언문)를 쓴 사례가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형 극단 폭력주의자’인 김씨에 의한 범행으로 보인다”고 규정했다. 김씨 수사에는 오는 8일부터 프로파일러가 본격 투입된다. 김씨의 논리ㆍ심리구조가 형성된 배경을 파악하고, 이를 범행동기와 연결짓는 등의 과정을 거칠 것이란 예상이다.

“김씨 태워준 공범” 의혹에 경찰 “참고인”

한편 범행 하루 전날인 지난 1일 오후 8시쯤 김씨를 부산 가덕도 인근 숙박업소 앞에 내려준 외제 차 운전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또다시 ‘공범설’이 제기된다. 김씨 동선을 수사하던 경찰은 사건 초기 이미 이 운전자 신원을 파악했고, 참고인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해당 운전자는 김씨와 모르는 사이이나, 같은 당 지지자로 여겨 태워줬다는 취지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외에도 지난 1일 김씨가 봉하ㆍ평산마을을 이동할 때 또 다른 차를 탑승한 사실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습격범 김씨가 지난 1일 묵은 부산 가덕도 인근 숙박업소. 위성욱 기자

습격범 김씨가 지난 1일 묵은 부산 가덕도 인근 숙박업소. 위성욱 기자

경찰은 한 언론사 게시판에 김씨 이름으로 전 정권을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다수 작성된 사실도 파악하고 조사 중이다. 게시물 내용과 김씨 진술 등에 따르면 같은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게시판에서 김씨 이름으로 된 게시물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작성됐으며, 글을 쓸 때 ‘작성자’ 이름은 임의로 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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