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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격할 북 탄도미사일, 러시아가 실전서 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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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01면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사용했다고 미국 백악관이 4일(현지시간) 밝혔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1년에도 수십차례씩 실시되지만, 실제 전쟁에서 쓰인 건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갖는다. 북한의 입장에선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의 실전 성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지난해 12월 30일 최소 한 발과 지난 2일 야간 공습 시 여러 발 등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시기로 미뤄 지난해 연말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 과정에서 북한산 탄도미사일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격전지인 자포리자 지역 공터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커비 조정관은 북한산 미사일이 목표물을 제대로 맞혔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실패라고 하기엔 아직 판단이 이르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는 현재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도 5일 “노골적인 대량학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미사일로 우리 영토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북한이 러시아에 공급한 것으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이 한국을 노려 개발한 무기라는 점이다. 러시아가 실전에서 미사일을 사용할수록 북한으로서는 실전 성능을 검증하고 보완할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이는 한국을 타깃으로 한 북한 미사일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 북한은 1990년대 중동 지역에 미사일을 수출하며 기술력을 높였다.

이 밖에 북한산 탄도미사일에 대응하는 서방의 방공망 체계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파악될 수도 있다. 러시아의 공세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제공한 패트리엇 체계를 총가동했기 때문이다. 한국군 역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패트리엇-2·3 체계를 갖추고 있다. 북한 미사일의 우크라이나전 실전 사용이 요격 회피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개발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북한 무기를 구매하려는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북한이 일종의 ‘쇼케이스’를 벌였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미 “북, 러에 탄도미사일 수십발 제공…사거리 900㎞”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미사일 지원 대가로 러시아에 전투기, 군수물자 등과 관련된 첨단 기술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FP=연합뉴스]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미사일 지원 대가로 러시아에 전투기, 군수물자 등과 관련된 첨단 기술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FP=연합뉴스]

커비 조정관은 이날 러시아의 북한 미사일 발사 지점, 탄착 지점을 표시한 지도까지 공개했다. 이런 정보 사안을 곧바로 세세하게 공개한 건 관련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북·러를 압박하려는 ‘인지전’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백악관이 밝힌 미사일의 사거리는 약 900㎞다. 평양 인근에서 발사한다고 가정하면 남한 전역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다. 제원으로 볼 때 러시아가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으로 추정된다. 한·미 군 당국 역시 KN-23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서 한국 군 당국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뿐만 아니라 휴대용 대공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지원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과감한 불법 거래 수법 등을 볼때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북한의 KN-23 뿐 아니라 북한판 에이태큼스 KN-24, 초대형방사포 KN-25 등 신형 전술 무기 ‘3종 세트’가 선박 또는 철도나 항공기 등을 통해 러시아로 운반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은 북한이 최근 러시아에 탄도미사일 발사대와 탄도미사일 수십발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가 향후 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추가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미사일 지원 대가로 러시아에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장갑차, 탄도미사일 생산 장비, 군수물자, 기타 첨단기술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에도 우려스러운 영향을 미칠 것임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러시아의 북한산 탄도미사일 조달은 여러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으로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무기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도 성명을 내고 “북·러는 북한 무기 금수를 규정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10일 열릴 우크라이나 관련 안보리 회의에서 북·러의 제재 위반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생산하는 ‘중요군용대차생산공장’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비밀엄수’ 표어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생산하는 ‘중요군용대차생산공장’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비밀엄수’ 표어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의 이 같은 밀착은 지난해 7월 25~27일 러시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 이후 본격화됐다.

앞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이 최근 몇 주간 다양한 무기를 러시아에 실어나르기 시작했고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처음으로 러시아 동부에 보내졌다”고 보도했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적대국가’로 재규정하고, 대남 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또 핵 무력까지 동원해 남한 전역을 점령하라는 ‘영토 완정’ 준비 지시도 내렸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 김정은 위원장이 딸 주애를 대동한 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대 생산 공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당 중앙이 제시한 발사대차(차량) 생산 목표를 넘쳐 수행하고 새해의 새로운 생산 목표 점령 투쟁을 기세차게 벌여나가고 있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같은 도발적 행보를 이어가는 건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협상에 나서 ‘한 몫’을 제대로 챙기기 위한 몸값 높이기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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