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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야구선수·가수였던 그를 일으켜세운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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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을 연기해보니 ‘레미제라블’의 본질적 메시지는 사랑이더군요.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을 보리’라는 마지막 가사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배우 민우혁(41)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19세기 암울하고 차가웠던 시대를 녹인 사람, 장발장의 따뜻함”으로 해석했다. 2015년 한국어판 ‘레미제라블’ 두 번째 시즌에서 젊은 혁명가 앙졸라를 연기했던 그가 지난해 말 개막한 세 번째 시즌에선 주역 장발장으로 돌아왔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주연 배우 민우혁이 장발장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이다.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주연 배우 민우혁이 장발장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이다.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영웅’, ‘프랑켄슈타인’, ‘마리 앙투아네트’, ‘안나카레니나’, ‘벤허!’, ‘지킬 앤 하이드’ 등 대극장 뮤지컬을 도맡아온 민우혁이 배우 최재림과 더블 캐스팅됐다. 지난해 6월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외과 의사 로이 킴 역할로 최고 시청률 18.5%(닐슨코리아)를 기록하고,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MBC) 출연 등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데 이어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역 민우혁 #8년만에 조연서 '장발장'으로 복귀 #드라마 '닥터 차정숙' 흥행에 겹경사 #빅토르 위고의 혁명정신은 '사랑'… #"19세기 프랑스 녹인 따뜻함 표현했죠"

차정숙의 '로이 킴', 고아 소녀 수호천사 됐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맘마미아’와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에 꼽히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을 노래로 극 전체가 이뤄지는 ‘송스루(Song Through)’ 뮤지컬에 압축한 작품이다.
무명 야구선수‧가수 생활을 거쳐 뮤지컬 배우로 고군분투하던 민우혁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무대도 ‘레미제라블’이다. “배우란 작품의 본질을 잘 표현하는 걸로 감동을 선사해,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직업”이란 직업관을 깨우쳐준 작품이란다. 지난해 10월부터 부산, 서울 등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를 지난해 말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꿈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에 발탁된 배우 민우혁을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이음엔터테인먼트

꿈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에 발탁된 배우 민우혁을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이음엔터테인먼트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로이 킴은 의사 경력이 단절된 차정숙을 응원하는 수호천사 같은 캐릭터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키다리 아저씨 면모가 강하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19년 노역형을 치르며 세상을 원망했던 죄수 장발장은 처음으로 그를 인간답게 대해준 마리엘 주교의 사랑으로 인해 개과천선한다. 가난한 고아소녀 코제트를 친딸처럼 키운다.

3시간 동안 30년 소화 "빵 훔쳐먹게 생겨" 합격

특히 민우혁이 연기하는 장발장은 초반부 야수 같은 출소자 시절이 워낙 강렬해, 분노와 악에 받친 복수심을 내려놓고 신의 마음을 갖게 되는 후반부 장발장이 더욱 돋보인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One Day Mor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One Day Mor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1985년 런던 초연 이래 53개국 1억3000만명이 본 ‘레미제라블’은 영국 오리지널 제작진이 오디션을 1년 넘게 볼만큼 캐스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 장발장은 “극 중 27~30년 동안 나이 드는 모습, 어려운 곡을 소화해야 하는”(협력연출 크리스토퍼 키) 역할이다.
“무슨 역할로든 참여하고 싶어 오디션에 임했다”는 민우혁은 "앙졸라 오디션 때 야수의 거친 면이 부족하단 지적을 기억하고, 자고 일어난 듯 흐트러진 상태로 오디션을 본 전략이 통했다"며 웃었다. “오디션 때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이 친구, 빵 훔쳐먹게 생겼다’고 했다더라”면서다.
합격 발표 후 딱 30초만 좋았단다. “죽기 전 마지막 역할이 장발장이길 바랄 만큼 꿈의 배역”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부담감이 컸다. “장발장의 음역대는 뮤지컬에서 손꼽는 난이도다. 남자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8년 전 '레미제라블' 성대결절, 훈련으로 극복 

‘레미제라블’ 앙졸라를 연기할 때 목청껏 노래하다 성대결절을 앓았던 그다. 이후 실용음악‧성악 총 4명의 전문가와 보컬을 단련했다. 3시간 여 공연에서 그가 꼽은 최고난도 넘버는 ‘브링 힘 홈(Bring Him Home)’. 청년 혁명가를 위해 장발장이 부르는 기도문이다. 3년 전 작고한 작사가 허버트 크레츠머가 1985년 런던 초연 개막 직전까지 가장 고심했던 노래다.
“제가 운동을 했기 때문에 힘으로 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야수처럼 내지르는 곡들은 힘으로, 감정으로 할 수 있지만 ‘브링 힘 홈’은 운동에 빗대면 필라테스처럼 속 근육을 써야 하는 넘버에요. 헬스를 2시간 쯤 한 상태로 필라테스 하는 고통이랄까요?”(웃음)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The Final Battl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 'The Final Battle' 합창 장면.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난 안 되는 사람"…실패한 오디션이 인생역전

민우혁에게 '레미제라블'은 "10년마다 실패하고 그만둬온 '포기 인생'에 브레이크를 건" 작품이기도 했다. 고교 시절 야구를 했던 그는 프로야구 LG트윈스 입단 직후 부상으로 눈물을 머금고 은퇴했다. 주변의 권유로 가수에 도전해 2007년 4인조 남성그룹 포코스 메인보컬로 데뷔하고 2012년 결혼 후엔 소극장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뮤지컬도 포기하려 했죠. 체육 교사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이란 각오로 뮤지컬 ‘데스노트’ 오디션에 갔는데, 김문정 음악감독이 ‘레미제라블’ 오디션은 안 봤냐고 묻더군요.”
'데스노트' 불합격을 딛고 도전한 ‘레미제라블’은 덜컥 붙었다. 운동으로 다진 1m87㎝의 큰 키와 듬직한 체격이 대극장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외과의사 '로이 킴' 역할로 출연한 배우 민우혁의 모습이다. 사진 JTBC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외과의사 '로이 킴' 역할로 출연한 배우 민우혁의 모습이다. 사진 JTBC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였는데, '아들 녀석이 제 밥그릇은 갖고 태어났구나' 했죠. 그때부터 ‘위키드’, ‘아이다’ 등 큰 작품들 오디션이 많았어요. 계속 도전만 하다가 처음으로 ‘뮤지컬 배우’란 직업이 생긴 거죠.”

부상 은퇴한 LG트윈스 '시구' 금의환향

지난해엔 LG트윈스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할만큼 뮤지컬 배우로서 명성도, 여유도 얻었다. 야구 공을 잡은 지 너무 오래돼서 땅바닥에 공을 패대기쳤지만, 그에겐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민우혁은 “결국 우리가 버티면서 살아가는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통해, 또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진 못했지만 부모님께 사랑받아 마음은 부자였죠. 포기할 때마다 무서웠지만 재도전한 것도 가족의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기인데 너무 일만 하나 싶은 생각도 있지만 ‘레미제라블’을 통해 아빠로서도 더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 역은 배우 민우혁(사진)이 최재림과 더블캐스트됐다.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 역은 배우 민우혁(사진)이 최재림과 더블캐스트됐다. 사진 레미제라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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