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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시민’ ‘괴물’…학교폭력 뒤 어둠을 다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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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학교 폭력 소재 OTT 드라마 인기에 이어, 청소년이 교실 안팎에서 겪는 폭력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린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다. 사진은 박진표 감독의 ‘용감한 시민’. [사진 마인드마크]

학교 폭력 소재 OTT 드라마 인기에 이어, 청소년이 교실 안팎에서 겪는 폭력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린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다. 사진은 박진표 감독의 ‘용감한 시민’. [사진 마인드마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나비효과일까. OTT(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드라마를 달궜던 학폭 소재가 스크린을 잇달아 찾는다. 시각을 달리한 작품도 늘어났다. 사건 본질에 대한 이해와 사회 인식 변화, 현실에 없는 상상까지 새로운 돌파구를 꾀한 점이 눈에 띈다.

29일 개봉하는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괴물’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동폭력 소재 드라마 ‘마더’의 작가 사카모토 유지와 손잡은 작품이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부쩍 행동이 이상해진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학교로 찾아가며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교사의 괴롭힘을 의심하는 학부모, 형식적인 사과를 거듭하는 학교 측의 사정, 아이들 간 따돌림, 가정폭력, 두 소년의 은밀한 우정 등을 학부모·교사·아이 각각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그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의 한 장면. [사진 미디어캐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의 한 장면. [사진 미디어캐슬]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22일 한국 취재진과 화상 간담회에서 “처음 사카모토 작가의 플롯을 받을 때부터 영화로 치면 1시간이 지나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도 긴장감이 지속됐다. 저도 모르게 ‘괴물 찾기’를 하고 있었다”면서 “관객도 영화를 다 봐갈 때쯤 상황을 알게 된다. 그때 ‘괴물은 나였구나’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화살을 여기저기 돌리고 있다가 마지막에 나에게 돌아오는 구조라는 것이 이 각본의 뛰어난 점”이라고 짚었다.

그간 교실 문제를 다룬 영화들과 ‘괴물’의 차별점은 어느 한쪽을 원인 삼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굳이 영화에서 괴물을 찾는다면 ‘우리들’과 같은 방관자다. 고레에다 감독은 주인공 소년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남자아이들만큼, 곁에서 집단 속에 얼굴을 감춘 채 부추기는 아이들을 “그 학급에서 가장 큰 괴물”로 꼽았다.

한편, 동명 웹툰 원작의 영화 ‘용감한 시민’(10월 25일 개봉)은 학교 재단을 ‘백’으로 둔 안하무인 학폭 가해 학생(이준영)을 햇병아리 기간제 교사(신혜선)가 응징하는 과정을 그렸다. 학폭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학생들의 고충뿐 아니라 학폭 대처에 무능한 학교, ‘갑질’ 학부모에 침해된 교권 문제까지 건드린다. 최근 드라마에서 인기 끈 사적 복수 장르로도 묶인다. 연출을 맡은 박진표 감독은 “우리가 모른척 했던 학폭과 교권 침해, 학부모 갑질이 드러나고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후련하게 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전임교수는 “예전엔 영화 ‘친구’(2001)처럼 폭력적인 선생님에 방점이 있었다면 요즘은 오히려 학부모가 궁극의 빌런이란 인식이 생겼다”면서 “영화 ‘괴물’이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 같이 학폭 가해 학생 이면의 사회 환경, 성장 배경, 가족 등이 어떻게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지 묘사한 작품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사회 문제들이 복잡하다. 요즘 벌어지는 학폭은 과거처럼 피·가해자의 이분법으론 해결 자체가 안 된다”면서 “‘괴물’의 경우 예전 방식으론 아이들의 고민에 맞닿을 수 없다는걸 (3자 시선) 구조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여준다”고 평했다.

학폭 묘사가 성숙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드라마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등을 쓴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콘텐트가 3단계로 전개돼왔는데, 학폭도 같은 단계를 거치고 있다”면서 “1단계는 피해자가 자신들의 슬픔·아픔에 초점 맞췄다면, 2단계는 가해자들의 악행 폭로, 반성·회개로 들어간다. 지금은 3단계다. 악행에 대한 폭로가 방관자까지 확대된다. 그간 반성의 주체 밖에 머물렀던 방관자를 또 하나의 가해자이자 공범으로 소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제의식도 단순 반성·폭로를 넘어 다음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짚었다.

다만, ‘학폭물’의 폭력 묘사 수위가 높아지는 건 우려스러운 점이다. 또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사적 복수극으로 대리 만족하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 심영섭 교수는 “가해자에 대해 사회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 교육 현장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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