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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더 지어달라"…이미 4곳 있는데 또 힘쏟는 청송군,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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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저출산 심화로 주요 지자체는 출산장려금이나 전입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을 늘렸지만, 비수도권 지자체는 대부분이 소멸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와 지자체는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꺼내 들며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주민등록상 주소를 둔 등록인구 외에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머문 체류인구를 더한 숫자다. ‘사람들을 정주(定住)시킬 수 없다면 최대한 오래 머물게 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라는 보다 유연화된 전략이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과거처럼 주민등록지만을 기준으로 인구를 측정하고 대책을 세우기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형태로 해당 지역에 오가며 활력을 주는 이들을 늘려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워케이션 조성부터 교도소 유치 경쟁까지…생활인구 모셔라

지난해 '생활인구' 개념이 법제화되고 올해 통계청이 전체 89개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생활인구를 산정해 분기별로 공표할 계획을 세우자 지자체들도 앞다퉈 생활인구 확대 방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남원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활인구 10만명 유치를 목표로 조례안을 제정했다. 온라인 남원사랑 시민증을 발급받으면 관광지와 공공시설 입장료를 할인해주고 기념품과 숙박권 등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뛰어든 교도소 유치 경쟁도 생활인구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교도관 가족이나 면회객들이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청송군은 이미 교도소 4곳이 있음에도 주민들까지 나서 유치에 힘쓰고 있다. 최슬기 교수는 “과거 혐오시설이라 생각했던 곳들이 지금은 인구 확대와 재정 투자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지자체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 곡성은 한옥마을의 유휴시설을 활용한 워케이션 공간 조성을, 해남군은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완도군은 청정 자연환경을 이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 생활인구 유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이 머물며 생산ㆍ소비 활동을 하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日 관계인구보다 정교한 데이터 구축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에서 생활인구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면 인구 대책을 세우기도 용이해진다”라며 “예를 들어 거주인구는 물론 생활인구도 없는 인구 소멸 지역의 경우 사람들을 아예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기존 주거지는 자연으로 되돌리는 등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성장 잠재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과거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이젠 지자체들이 체류인구를 위한 투자에 나서면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라며 “일례로 스타트업을 모으기 위해 해당 지자체가 각종 규제 등 허들을 낮춰주다 보면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찍이 저출산 고령화로 지방 소멸 위기를 맞은 일본은 한국의 생활인구와 비슷한 ‘관계인구’라는 개념을 내세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로는 ‘고향 납세’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도시민이 특정 지역의 응원하고 싶은 사업을 선택해 기부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22년 고향 납세 명목으로 일본 전국의 지방정부가 받은 기부금은 9564억1000만엔(약 8조7900억원)에 이른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복수주소제를 허용하고 있다. 주말부부나 취업 등의 이유로 부주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행정 및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2021년 기준 독일 인구의 1.5%인 120만명이 부주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주민들은 부거주지에 대해서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교한 계획을 짜야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생활인구가 늘면 지방공공재 사용, 행정 서비스 제공 등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지방 교부세를 늘리는 식으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생활인구에는 외국인도 포함되는데, 이들의 활동과 정착을 돕는 정책도 필요하다. 조영태 교수는 “독일과 같이 법제화까지 이어지게 되면 세금 문제가 끼어들게 돼 복잡하고, 다시 거주지 중심의 인구 대책으로 돌아갈 우려가 있다. 한국은 좀 더 유연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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