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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들의 패밀리 스캔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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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산업부장

박수련 산업부장

요즘 재계는 가족 간 송사와 갈등으로 시끄럽다. 2대 혹은 3대에 걸쳐 물려 받은 경영권 및 재산을 놓고 형제·남매가, 혹은 부부가 법정 안팎에서 다투고 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주요 대기업집단 중 창업주 이후 대물림 과정에서 ‘형제의 난’을 겪지 않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창업주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마다 갈등은 반복됐고, 여론전도 치열했다. 최근 들어 이들의 스캔들엔 극적인 요소가 추가됐다. 형제간 다툼에 사모펀드(PEF)가 끼어들고, 남매간 다툼도 늘고 있으며, 평가액 조(兆) 단위의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냐를 두고 겨루는 이혼 소송도 등장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전경. [중앙포토]

어느 쪽이든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공감도 잘 안 되는 다툼이다. 그럼에도 고용이나 GDP(국내총생산)에 기여도가 큰 대기업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 대중의 관심은 크다. 특히, 상장사 총수 일가가 지분 확보 경쟁이라도 벌이면 회사의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주가는 널뛰고, 개미 주주들은 피해를 본다. 그럼에도 여러 대기업에서 여러 대에 걸쳐 이런 갈등이 되풀이되니, 여론은 ‘이번에도 그러려니’ 한다.

이렇게 무뎌진 국내와 달리, 한국 밖에서는 이들의 전쟁을 신기하고 이국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들 눈엔 해외토픽인 거다. 지난 18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LG그룹 총수 일가의 소송이 그렇다. 자산 170조원의, 재계 4위 대기업에서 벌어진 상속 재산 다툼의 내막이 전 세계에 중계됐다. 총수인 구광모 회장과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배우자 및 두 딸이 주고받은 논란의 대화까지 포함된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됐다. 기사에 인용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싸늘한 평가와,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라는 이 매체의 부속 기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세계를 무대로 뛰는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치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할 총수들을 대통령이 ‘떡볶이 병풍’으로 세워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세상은 달라졌다. 정권의 성공보다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더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경영권 승계와 상속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막장극에 가까운 가십이 퍼지는 사이 창업주의 도전정신이나 선대 회장의 유지는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만의 패밀리 스캔들이 반복되는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최대주주 할증 적용시, 상속 재산의 60%)을 낮추자는 재계의 주장은 허공에 맴돌 것이다. ‘계속 이럴 텐데’라는 보통 사람들의 예단이 충분히 합리적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