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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논리에 휘둘린 ‘원자력의 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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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부장

오늘(27일)은 13번째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원자력의 날)이다. 2009년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것을 기념해 만든 원자력 업계 최대 잔칫날이다. 장차관급 인사가 기념행사에 참석해, 원전산업 유공자에게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여하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한다.

하지만 ‘탈원전’을 추진하던 지난 정권에선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처음 열렸던 2017년 행사에선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을 없애 정부 포상 격을 낮췄다. 장관급은 물론 당초 참석이 예정됐던 차관급 인사도 축사만 배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홀대는 문 정권 말까지 이어졌다. 2021년 행사는 나흘 앞당긴 23일에 열렸다. 연말·크리스마스 연휴 등을 고려해 앞당겨 개최했다는 게 정부의 궁색한 변명이었다. 당시 취재기자이던 필자에게 “진영 논리 탓에 원자력 ‘진흥’을 위한 날이 원자력 ‘포기’를 위한 날로 변질한 것 같다”며 서글퍼하던 원전업계 대표의 하소연을 잊을 수 없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교조적 이념에 갇혀 5년간 자행됐던 탈원전 패착이 지금 와선 뼈아프다. 설계·건설·운영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던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러시아 등 경쟁국이 세계 원전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어서다.

그새 세계 경제에서 원전의 위상은 달라졌다. 원전에 색안경을 끼던 주요국은 이제 ‘적극 수용’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2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선 22개국이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2010년 대비 3배 늘리기로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탄소중립이 중요한 과제인 데다,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선 원전 생태계가 제자리를 찾고, K원전의 수출을 늘릴 기회다. 그런데도 국내선 야당을 중심으로 원전 발목잡기가 여전하다.

자원 빈국인 한국이 산업화를 통해 경제강국으로 도약한 데는 원전이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탄소 저감을 달성하고,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려면 한국에선 원전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하지만 문 정권을 거치며 원전은 에너지 정책 이슈가 아닌, 진영 논리에 좌우되는 민감한 정치 아이템이 돼 버렸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조차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이 있다면, 석탄에 집중하기 위해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실수”라고 했다. ‘탈원전은 우리 편, 친원전은 남의 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면 툰베리처럼 현실적인 대안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