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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스윙보터, 그들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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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현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오현석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한국갤럽의 신년 여론조사(지난달 28~29일)에서 눈에 띈 건 30대 민심이었다. 60대 이상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국민의힘 지지율(37%)이 더불어민주당(32%)에 앞섰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75%)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반대 여론(84%)이 가장 높았다. 이준석·이낙연 신당 출범 시 지지정당 변경 의사(24%)도 20대와 함께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윙보터’(swing voter) 세대다.

공공연히 “중도는 없다”고 외치는 민주당도 30대 앞에선 신중해진다. 2년 전 이들 세대가 등을 돌리자, 대선에서 고배를 삼킨 기억 때문이다. 당시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30대 득표율 추산치는 ‘윤석열 48.1%, 이재명 46.3%’로 집계됐다. 캠프에선 “20대·40대·50대를 다 이기고도, 30대를 못 잡아서 졌다”는 탄식이 나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 [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 [뉴스1]

그래서일까. 야당의 ‘입법 독주’도 이들 앞에선 멈춰선다. 2022년 정치권 일각에서 만지작거렸던 ‘통화 녹음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먼저 발의한 법안에 30대가 거세게 반발하자, 민주당은 슬그머니 내부 검토를 중단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개인 권리 보호 차원으로 접근했는데, 30대는 ‘억울한 상황에서 나를 지킬 보호 수단이 사라진다’고 격분하더라. 큰일 나겠다 싶어 접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다시 30대를 주목하게 된 건, 이들에겐 통하지 않는 ‘선(先) 지지층 결집, 후(後) 중도 포섭’ 공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흔히 여의도에선 “중도층은 나중에 챙기라”고 한다.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진영만 결집하면, 대세론으로 중도층은 쉽게 흡수할 거란 오만한 계산법이다.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양당이 ‘김건희 특검법’ 올인(민주당)과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국민의힘) 같은 네거티브를 더 앞세운 건 기존 공식에 충실히 따른 결과다.

하지만 낡은 수법이 대세론 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스윙보터’ 30대에 먹힐진 미지수다. 이미 여의도 30대 정치인들은 진영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천하람·이기인 등 여권의 30대는 ‘개혁신당’ 깃발을 들었다. 류호정 의원 등 정의당 30대 당직자들은 “진보 아닌 중원으로 가겠다”며 신당 ‘새로운선택’을 택했다. 동년배 유권자가 손을 맞잡을지 불확실하지만, 변화는 시작됐다. 20년 전 열린우리당 86세대가 윗세대를 순식간에 밀어낼 때도 그 결과를 연초부터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