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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딸, 피 흥건한 엄마…이스라엘, '서울 테러' 영상 띄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제작해 배포한 영상. 유치원 학예회 도중 서울에서 무장단체의 테러 공격이 발생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유튜브 캡쳐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제작해 배포한 영상. 유치원 학예회 도중 서울에서 무장단체의 테러 공격이 발생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유튜브 캡쳐

202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서울의 한 유치원 학예회,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하윤이가 성탄 노래를 부른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이 모습을 촬영하던 도중 별안간 공습 경보가 울린다. 엄마는 하윤이의 손을 잡고 지하 시설로 대피하지만, 결국 포탄 공격을 받은 뒤 함께 무장 괴한에 납치된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엄마는 얼굴에 피가 흥건한 채로 하윤이를 찾는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보이지 않고, 바닥엔 하윤이가 끼고 있던 빨간 장갑이 떨어져 있다.

반(反)이스라엘 여론 막으려 '서울 테러' 영상 제작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제작해 26일 페이스북·유튜브 등 SNS에 게재한 동영상 내용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세요”란 제목의 동영상은 지난 10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납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성과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국 서울에서 무장괴한의 테러 공격이 발생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난민촌. UPI=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난민촌. UPI=연합뉴스

영상은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1200명의 남성, 여성 어린이가 살해당하고 240명 이상이 인질로 잡혀 가자로 끌려갔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끝난다. 해당 영상을 크리스마스 이튿날 게재한 것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민간인 살해·납치로 이스라엘은 성탄 연휴도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이런 동영상까지 활용해 하마스에 대한 전면전의 정당성을 강조한 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반(反)이스라엘 목소리가 확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이다.

80여일째 '피의 보복' 이어가는 이스라엘 

 납치된 엄마가 무장괴한에 손에 납치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유튜브 캡쳐

납치된 엄마가 무장괴한에 손에 납치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유튜브 캡쳐

다만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이 지난 80여일간 ‘피의 보복’이라 물리는 보복 공습을 감행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당 동영상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한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댄 휴전 국가인 데다, 북한은 지금도 ‘서울 불바다’를 언급하며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는 등 안보 불안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 특유의 안보 공포를 활용한 것처럼 읽힐 우려가 있다. 특히 무장괴한이 피 흘리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거나 끌고 가는 등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묘사가 영상에 담겼다.

이와 관련, 전쟁 발발의 원인을 제공한 건 하마스지만, 최근엔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처가 단순한 보복을 넘어 사실상 ‘학살’에 이르고 있다는 여론이 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상대로 1만회가 넘는 지상 공습에 나섰고, 무차별적인 지하터널 폭파를 이어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그들(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변화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이번 정부는 이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 이유다.

성탄절 이스라엘 공습에 320명 사망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궤멸을 전쟁의 목표로 설정하고 전쟁 강도를 완화하라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궤멸을 전쟁의 목표로 설정하고 전쟁 강도를 완화하라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은 이스라엘을 향해 전쟁의 강도를 완화하라는 압박을 계속하고 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성탄 연휴인 24~25일에도 가자지구에 집중 공격을 퍼부었는데, 가자지구 보건부 등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최소 320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다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크리스마스 당일인 지난 25일엔 가자지구 북부에 주둔 중인 261여단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특히 “누가 (전쟁) 중단을 말하든 그런 일은 없다. 전쟁은 끝까지,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언급한 ‘전쟁 목표’는 하마스의 완전 궤멸이다. 이스라엘은 최근 전쟁 협상 중재국인 이집트가 상호 인질·수감자를 석방하고 전쟁을 종식하는 내용의 평화 중재안을 제안하자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마스 섬멸이라는 목표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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