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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이틀밤샘 가능…대법, 초과근무 해석 뒤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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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주중 ‘크런치 모드’(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집중 근로)로 일해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루 21시간씩 철야 근무를 이틀 연속(하루 13시간씩 초과근무)하더라도 나머지 사흘간 합쳐서 10시간만 근무했다면 ‘주 12시간’ 연장근로 한도를 제한한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7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주 12시간 한도 초과 여부를 판단할 때 1주간 실근로시간 중 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며 “각 근로일마다 초과 시간을 합산한 원심은 법리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항공기 객실청소 업체 대표 A씨가 근로자 B씨에게 사흘 또는 나흘씩 장시간 연장근무를 시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원심을 일부 파기 환송하면서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53조1항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 건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의미이지 1일 연장근로 한도까지 별도로 규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주 52시간(주 12시간 초과근무) 한도 내에선 일별 초과 근로시간은 1일 ‘법정 근로시간’(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보다 길어도 무방하다는 취지다.

‘집중근무 직원’ 1·2심 일부 파기환송

이번 판결은 2018년 ‘주 52시간제’(법정 근로시간 40시간+최대 연장근로시간 12시간) 도입 이후, 당사자 합의가 있을 경우 허용되는 ‘1주간 12시간’ 연장근로를 어떻게 계산할지 대법원이 3년1개월간 심리를 벌인 끝에 내린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일별 초과근무를 단순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간 총 근로시간에서 법정근로 40시간을 초과한 부분만을 ‘연장근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앞서 A씨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일하다 사망한 근로자 B씨에게 ‘1주간 12시간’의 한도를 초과해 연장근로(3년간 총 130개 주)를 시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근로기준법상 주 12시간 한도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B씨는 통상 주말 근무는 하지 않고, ‘3일 연속 근무 후 하루 휴무’를 얻는 식의 ‘집중 근무’ 체제로 일했다. 1심은 문제가 된 130개 주 가운데 109개 주를 유죄라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1주당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시간 계산법을 두고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근로기준법 50조가 정한 ‘법정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기준법 53조 1항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총 12시간을 연장근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노동계 “시대착오 판결…큰 혼란 부를 것”

원심은 ‘12시간 연장근로’를 각 주별로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한 시간을 주간 합산하는 방식(일별 합산법), 주간 총 근무시간에서 법정근로 40시간을 빼는 방식(역산법)을 각각 적용해, 어느 하나라도 12시간을 초과하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기존 하급심과 실무 현장에서 통용되던 방식이다. 반면에 대법원은 일별 합산 방식이 아니라 역산법으로만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109개 주간’ 가운데 총 3개 주는 주간 최대 52시간을 넘지 않았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예컨대 원심은 근로자 B씨가 2014년 4월 셋째 주인 15일 12시간, 16일 11시간30분, 17일 14시간30분, 20일 11시간30분 등 나흘간 하루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시간을 합산하는 방식(4시간·3시간30분·6시간30분·3시간30분=17시간30분)으로 주 12시간 한도를 초과했다고 봤다. 이는 1일 법정 근로시간에서 하루하루 발생하는 초과시간의 합계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2018년 5월 ‘고용노동부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의 행정해석과 일치한다. 반면에 대법원은 근로자 B씨가 같은 주 나흘간 총 49시간30분 일했기에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에서 9시간30분만 초과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1일 8시간을 법정노동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동안 현장에 자리잡은 연장근로수당 산정방식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며 “시대착오적이며 쓸데없는 혼란을 자초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극단적인 예시로 1주 이틀 연속으로 24시간 밤샘 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21.5시간씩 근무하게 된다. 기존 기준대로라면 이틀에 걸쳐 하루 13.5시간(21.5시간-8시간)씩 총 27시간을 초과근무하므로 위법이지만, 대법원 판례대로면 주 총근로시간(43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았으므로 법 위반이 아니게 된다.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박성우 노무사는 “이번 판례대로면 밤샘 연장근로가 가능한 만큼 휴식권 의무화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유럽과 같이 근로일 간 최소 휴식시간을 보장하거나 하루 근로시간 상한을 도입하는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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