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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꾼 천인계획, 미국의 대응은?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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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자 장서우청(張首晟) 스탠포드대 교수가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사망했다. 당시 55세였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발표됐다. 하지만 공교로운 시점 때문에 여러 음모론이 꼬리를 물었다. 미국과 중국 정부가 그의 죽음에 개입돼 있다는 식이었다. 확실한 것은 장서우청이 중국-미국 간 인재 쟁탈전의 한복판에 놓인 상징적 인물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여기엔 중국의 해외 인재등용 프로그램인 ‘천인(千人)계획’이 자리하고 있다.

장서우청(張首晟·55) 교수의 생전 모습. 바이두

장서우청(張首晟·55) 교수의 생전 모습. 바이두

해당 보도가 나가고 국제 사회의 비난 움직임이 일자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말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하지만 최근 로이터 통신은 중국 정부 문서와 소식통들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첨단 기술 습득을 위해 새로운 이름과 형식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고 전했다. ‘치밍(啟明)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바꿨다.

치밍 프로그램은 해외 인재에게 주택 구입 보조금과 300~500만 위안(5억5000만~9억원)의 계약 보너스를 제공한다. 치밍에 선발된 인원은 대부분 미국 명문대 출신이며 최소 한 개 이상의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반도체처럼 민감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를 중점적으로 채용하는데, 중국 각급 지방 정부·부처로부터 공식적으로 지원받는 관련 채용 활동과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치밍 프로그램은 천인계획 때와 달리 채용 대상자를 공개하지 않고 정부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이 없다. 로이터는 정부 문서를 살펴본 결과, 치밍이나 관련 프로그램에 수천 명이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부터 온라인 지식 플랫폼 ‘즈후(知乎)’ 비즈니스 전문 소셜 미디어 링크드인에서 치밍 지원자를 모집하는 광고 10여 개도 발견했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대만 TSMC 등 각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에서 반도체 설계, 패키징 기술, 서비스, 경영진 등 부문의 인재를 빼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공개적으로 ‘반도체 부문 자립’을 여러 번 강조했다. 관영 싱크탱크 중국정보산업개발센터와 중국반도체산업협회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엔지니어, 칩 설계자 등 분야에서 20만 명 정도의 인력이 부족하다.

스마트 제조. CMG

스마트 제조. CMG

프랭크 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에이킨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이 해외 인재를 채용하는 실제 목적은 지식 재산권과 첨단 기술을 훔치는 데 있다”고 했다. 이것이 천인계획의 목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장서우청은 중국이 낳은 천재 중 한 명이었다. 1978년 열다섯 살 때 독학으로 고교 과정까지 마치고 상하이 명문 푸단(復旦)대에 입학했다. 그가 속한 과는 ‘물리2계(제2물리학부)’로 불렸는데, 당시 국가안전부 기능까지 담당하던 공안부가 이 과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정보기관에 의해 은밀하게 육성된 인재였던 셈이다.

장서우청은 이듬해 국비 유학생으로 독일에 갔고, 1년 후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는 문화대혁명(1966~76)으로 인해 10년간 엘리트 교육이 단절된 직후였다. 갓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젊은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 지식을 쌓은 후 매년 100명씩 고국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백인(百人)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과학과 산업기술이 괄목할 성장을 보이자 중국 정부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2009년부터 2018년 말까지 10년간 1000명의 해외 인재를 중국에 불러들인다는 천인계획이었다. 2010년엔 이를 확대해 55세 미만 중국인 과학·기술자 1000명, 40세 미만 중국인 청년 과학·기술자 1000명, 55세 미만 외국인 과학·기술자 1000명을 불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삼천인계획’이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수천 명의 해외 인재가 중국으로 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8년까지 이런 식으로 2629명을 불러들였다. 의학·생명공학·보건학자가 44%, 응용과학자 22%, 컴퓨터공학자 8%, 항공우주공학자 6%, 천문학자 6%, 그 밖에 경제학자, 재정학자, 수학자 등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0년대에 중국이 천인계획을 통해 7000여 명의 정상급 과학자를 데려왔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미국 거주자였고, 비중국계 외국인 과학자도 수백 명 포함됐다. 이들 중 단기계약 과학자들에겐 초기 자금으로 7만4000달러, 장기 계약자들에게는 70만 달러 이상의 보상과 주택, 의료 등 혜택이 주어졌다. 인공지능(AI) 분야 박사 초임 연봉으론 100만 위안(약 1억8000만원)이 책정됐다고 한다.

이미 ‘양자스핀홀 효과’로 유명했던 장서우청도 천인계획 실시 초기에 부름을 받고 칭화(清華)대로 초빙됐다. 2013년엔 중국과학원으로부터 외국적 원사(院士)를 수여받았다. 원사는 과학 분야에서 최상위 칭호다. 2017년엔 ‘천사의 입자’로 불리는 마요라나 페르미온의 존재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다. 장서우청은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미·중 간) 과학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중 간 과학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인계획 같은 중국의 인재영입 프로그램이 미국의 타깃이 되기 시작했다. CMG

미·중 간 과학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인계획 같은 중국의 인재영입 프로그램이 미국의 타깃이 되기 시작했다. CMG

하지만 미·중 간 과학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인계획 같은 중국의 인재영입 프로그램이 미국의 타깃이 되기 시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천인계획에 포함된 중국계 미국인 연구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장서우청이 설립한 투자 회사 단화(丹華)자본도 타깃이 됐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로봇 기술, 가상현실 등 분야에서 기술력을 가진 신생기업들에 투자했다. 단화자본이 출자한 2개 기업은 미 당국이 제재하는 화웨이 등과 업무제휴를 맺었다.

미 방산업체 'SOS인터내셔널'의 중국 전문가 제임스 멀버논은 미 상원 법사위에서 “천인계획 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미국 과학자가 300명 이상”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천인계획 참여자들은 중국 정부 비용으로 중국을 방문해 기술 정보를 제공하고, 중국의 기술적 이해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후 미국에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개발·생산 지원 참여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에너지부는 소속 직원이나 계약 과학자 등에게 '민감한 연구'로 분류될 수 있는 제3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을 경우 신고하도록 하며, 이들이 해당 프로그램과 관계를 끊든지 아니면 미 정부 관련 직책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안보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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