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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채점에 1시간" 교수는 악필에 진땀…학생은 다른 불만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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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A 교수는 지난 14일 기말고사 끝난 이후로 학생들의 답안지 채점에 돌입했다. A 교수는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워 여러 사람에게 ‘어떤 글씨로 보이냐’고 물어가며 채점하느라 두 장짜리 답안을 채점하는 데에 1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토로했다. A 교수는 “글씨를 못 쓰는 학생은 학생대로 고생, 교수는 교수대로 고생”이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로스쿨뿐만 아니라 서술·논술형 시험이 많은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도 학생들의 ‘지렁이 글씨’로 난관의 연속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철학과 교수는 “글씨를 못 알아본다고 무작정 틀렸다고 할 수도 없어서 조교와 머리를 맞대고 글씨를 ‘해독’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변호사 시험 등 국가고시 답안 채점에 다수 참여한 경력이 있는 한 교수도 “글씨를 못 쓴 게 아니라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의 답안지도 다수”라며 “답안을 통해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것까지가 실력”이라고 말했다.

학원에서 공개한 학생의 모의고사 답안지. 학원 홈페이지 자료 캡처

학원에서 공개한 학생의 모의고사 답안지. 학원 홈페이지 자료 캡처

반대로 학생들 사이에선 오히려 손글씨 시험이 시대에 뒤쳐졌단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구모(25)씨는 “평소 노트북으로 공부를 하다 내신 시험만 수기로 치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익숙하지 않은 필기 탓에 시험기간만 되면 5명 중 1명은 손목보호대를 꺼낸다”고 하소연했다. 외교관 선발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5)씨도 “악필이면 감점이 된다는 소문에 펜도 5번 이상 바꿔가며 대비를 했다. 시험 때문에 글씨도 연습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구모(25)씨는 ″평소 컴퓨터로 공부하는 것과 달리 교내 시험은 수기로 치러져, 시험기간만 되면 손목보호대를 착용한다″고 토로했다. 독자 제공

서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구모(25)씨는 ″평소 컴퓨터로 공부하는 것과 달리 교내 시험은 수기로 치러져, 시험기간만 되면 손목보호대를 착용한다″고 토로했다. 독자 제공

수기시험에 부담이 커지면서 컴퓨터로 치러지는 국가고시도 늘고 있다. 국회사무처가 주관하는 입법고시는 오는 2024년 2월 채용 시험부터 컴퓨터 기반 시험(CBT) 방식으로 치러진다. 오는 1월 치르는 제13회 변호사시험에도 처음으로 CBT가 도입된다. 지원자 3736명 가운데 99%가 CBT를 선택할 정도로 수험생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교수들도 CBT 방식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천경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교수들도 글씨를 해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학생들도 고생하지 않아도 돼 반갑다”며 “이번 CBT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학교 시험에까지 확대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장비와 시설 문제로 교내 시험까지 CBT 방식이 도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로스쿨 관계자는 “변호사 시험 시설 마련을 위한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며 “교내 시험을 위한 시설 도입은 아직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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