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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제조업 축소를 막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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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세계 경제 질서의 흐름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때 신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이를 전파하며 세계화에 앞장섰던 미국에서는 이제 민주당, 공화당 공히 자국산업 보호와 육성에 개입하는 산업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유럽연합도 역내국가들의 자국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별적 산업정책을 금지하는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유럽주권펀드를 창설하고, 역외국가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개별 국가의 핵심산업 지원 프로그램을 승인하려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전파자들이 마음을 바꾼 것은 중국의 산업경쟁력과 기술 수준의 추격이 너무 빨라 자신들의 경제적 우위와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달리 보면 과거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와 중국의 산업정책이 유효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산업지도와 생산공급망 재편 한창
선진국들의 산업정책은 지속될 것
대기업 정상외교 동원 실리 따지고
구조조정, 기술인력 양성 집중해야

제조업을 2차 산업이라 한다. 농수산업, 광업과 같은 1차 산업에서 생산된 식료나 원자재를 가공한 상품을 만들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 제조업이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나 이웃 유럽 국가, 미국처럼 이미 18세기부터 산업화를 시작했던 나라들은 산업기술력과 제조설비 등의 우위를 지키며 제조업 강국의 위치를 오래 누렸다. 영국은 산업혁명 후 한 세기 넘게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의 지위를 지켜오다 19세기 말 이 지위를 미국에 내어주었다. 미국도 이 지위를 한 세기 이상 지키다 21세기 초에 중국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오랫동안 제조업 강국 위치를 지킨 나라들은 거기서 창출된 부로 3차 산업, 다시 말해 금융, 보험, 유통, 컨설팅, 설계, 디자인, 회계, 홍보 같은 지식기반 서비스산업 분야를 성장시켰고, 이 분야의 경쟁력에서 앞서가게 되었다. 일본, 독일의 제조업 부상, 그 뒤로는 중국과 신흥국들의 제조업 부상으로 영국과 미국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점차 잃자 서비스산업으로 경제의 중심을 옮기게 되었다. 한때 영국과 미국은 제조업이 GDP의 40%를 넘었으나 이제 미국은 10%, 영국은 9%로 축소되었다. 후발 산업국으로서 서비스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독일, 일본은 여전히 제조업 강국으로 남아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의 제조업은 부침이 너무 가파르다. 1963년 GDP의 14%에서 2011년 31%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 국면에 들어가 올해에는 27% 정도로 추산된다. 제조업 고용의 부침은 더 심해 1963년 총 고용인구의 8%에서 1989년 28%를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에는 16%로 줄어들었다. 중국과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고용 효과가 작은 IT산업 등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확대 성장하는 기간이 충분히 길지 않았고,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제대로 키우기도 전에 제조업이 하락세로 들어섬에 따라 제조업에서 방출된 인력들이 생산성이 훨씬 낮은 음식숙박업, 소매업 등과 같은 자영업, 공공서비스직과 일용직 근로자 등 불완전 고용형태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결과 중산층이 줄어들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해 왔다. 이는 다시 정치 양극화를 부추겨왔다.

우리도 앞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나 이는 장기간에 걸쳐 우리 사회에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고 빠른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지켜나가야 한다. 제조업은 또한 우리와 같이 국가안보가 극히 중요한 나라에서 필수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산업이다.

산업정책의 효과와 장단점에 대한 논쟁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산업정책은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선진국들의 산업정책은 단순히 경제적 고려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기후환경과 같은 요인들이 깔렸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산업정책은 더 강화되거나 지속할 것이다. 지금은 국가 간 산업정책 경쟁으로 세계 산업지도와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냉정한 정세 판단과 국가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다. 아마도 정세 분석이나 생산지역 선정에 있어 정부보다 더 많은 고민과 조사를 해왔을 것이다. 정상방문 때마다 재벌총수들을 대동해 그 나라에 투자를 약속하고 환심을 사는 것의 득실도 잘 따져야 한다. 그보다는 우리 기업들의 해외시장 확보와 관세 문제 등을 외교력으로 지원해 주고, 턱없이 높은 국내 부동산가격, 토지규제, 경직된 임금체계 및 고용제도의 개편, 중소기업정책의 혁신 등 구조조정 추진으로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산업정책에 있어서도 부작용을 줄이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정부가 개별기업보다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인력 양성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첨단산업 이공계 정원 및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확대, 기업들의 기술학교 설립 허가 등 교육제도 개편 방안도 따라야 할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