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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복기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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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3년이 저문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기뻤던 일을 떠올리며 기운을 내기도 하고 아팠던 기억을 헤집어 내어 반복하지 않도록 정비할 시간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비판과 분석이 뒷북치듯 나오고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지난여름 있었던 잼버리 사태와 공통점이 보인다. 둘 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수많은 사람과 자원이 동원되었음에도 현장에서 정보가 수집되고 모이는 과정에서 포착됐던 위험 신호들이 제대로 처리되거나 결정권 있는 윗선으로 전달되는 기제에 큰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실패의 경험이 하루하루 밀려드는 다른 일과 새로운 이슈에 묻혀버린다면 같은 일은 얼마든지 반복될 것이다. 전략이나 노력보다 일하는 방식과 태도의 문제가 보이기 때문이다.

잼버리와 엑스포 패착의 공통점
권위적·형식적 회의 문화가 문제
솔직·원활한 소통은 리더의 책임
의사결정 방식 돌아보고 고쳐야

여럿이 함께 일하는 조직은 거대한 정보 프로세서다. 흔히 조직의 모습이 피라미드 구조를 갖는 것은 현장의 다양한 정보들이 모이고 버려지는 필터 과정을 거쳐 압축된 정보를 만들어 의사결정의 자료를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종적으로 횡적으로 원활하게 정보가 순환되는가는 시스템의 핵심이다. 물론 이렇다 저렇다는 평가는 사후적이니까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정보의 순환이 원활했다면 어느 시점에선가 상황 평가를 통해 잼버리 계획이 수정될 수는 없었을까, 엑스포 유치를 향해 뛰다가도 적절한 시점에 우아한 엑시트를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는 많이 희미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주변을 맴도는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소통문화가 문제다. 말콤 글래드웰은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아웃라이어』에서 1997년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고 당시 조종실 내 기장과 부조종사 간 대화를 사례로 들어 이러한 소통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서열문화가 강할수록 윗사람에게 반대의견을 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심지어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애써 완곡하거나 약하게 표현하여 합리적인 정보전달과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관성이란 매우 강해서 스스로 자각하기도 힘들고 알아도 고치기 힘들다. 그래서 억지로 행동 패턴을 바꾸거나 강한 윗사람의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리더의 호불호나 눈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심기 경호’는 그것을 행하는 아랫사람의 잘못이기라기보다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귀히 여기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윗사람의 잘못이다. 적극적인 왜곡뿐 아니라 소극적인 자기검열은 중요한 정보를 누락시킨다.

더불어 여전히 남아있는 불필요하게 지나친 의전도 원활한 소통을 방해한다. 각종 회의에 형식적인 축사와 발언 순서, 위계가 뚜렷한 자리 배치 등은 참석자들에게 누구의 발언이 더 중요하고 누구를 모셔야 하는지를 뚜렷이 알리고 시작한다. 형식이 우선시된 회의에서는 형식적인 정보가 오갈 확률이 높다. 비슷비슷한 용어들이 개조식으로 나열된 회의자료는 여럿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하나의 결정으로 모아갈 수 있는 아까운 시간을 자료 읽기에 낭비시키기 쉽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내린 결정도 늘 옳을 수는 없다. 사람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이들끼리일수록 갈등을 최소화하고 서로에게 동조하는 심리적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집단사고의 위험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가 미국 케네디 대통령 때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상대로 쿠바 침공을 단행했다가 대대적으로 실패한 피그스만 침공사건이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석학과 전문가로 구성된 각료 회의에서 케네디는 침공 10일 전에 작전 감행 여부를 돌아가며 물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면전에서는 모두 동의했지만 실은 하나같이 결정에 관해 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음이 사후에 밝혀졌다. 옆 사람이 침묵하니 나도 굳이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옳소 옳소 하는 분위기가 스멀스멀 퍼지는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백악관 회의의 논의 방식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공식적으로 검토하여 고쳐야 할 것을 명료화하고 차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뜯어고쳤다. 다양한 관점을 도입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수록 질문하고 계급장 떼고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했다. 우리도 잼버리든 엑스포든 일이 추진된 과정을 공식적으로 꼼꼼히 기록하고 돌아보는 작업은 반드시 해야한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투표 당일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마치 스릴 넘치는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처럼 보도하고 생중계까지 진행한 언론은 결정이 있고 나서야 마치 기다렸던 듯이 일본 오사카가 25년 엑스포를 앞두고 겪는 문제를 담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비판이 있을 때마다 언론이 살아있어야 감시가 이루어지고 독립적인 목소리가 없으면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엑스포 관련해서 똑같은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 외에 독자적인 취재나 분석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