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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중러의 반작용에 잘 대처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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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올해 1번 외교 뉴스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일 것이다. 그때 출범한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는 순항하고 있다. 각 레벨에서 다양한 협의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3국 안보실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내년에는 3국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것이다. 이 과정은 미국의 리드, 일본의 재청, 한국의 호응으로 추동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북·중·러의 움직임도 현저하다. 점증하는 북핵 위협과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중·러의 행보를 고려할 때, 한·미·일 안보 협력은 유용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비핵 평화 통일이라는 별도의 어젠다가 있고, 이에는 중·러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주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일 결속 북중러 반작용 강해
방치하면 비핵 평화 통일에 저해
한국형 외교 좌표 확실히 하면서
대 미중러 관계 총체적 관리해야

북한은 캠프 데이비드 이전부터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근래 북한은 위성과 ICBM을 잇달아 발사했고, 9·19 군사합의를 전면 파기했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러시아와 긴밀한 연대하에 나왔다. 캠프 데이비드 이후 맞대응에 앞장선 것은 러시아였다. 푸틴은 김정은을 우주 발사 기지로 초청하여 발사체와 위성 관련 협력을 시사했다. 북한에 모든 탄도 미사일 발사를 금한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는 모양새였다. 무기 거래와 노동자 진출도 현안이 되었다. 모두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한·미·일 연대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응에 제약이 없음을 각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은 아직 강한 맞대응을 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을 허투루 여기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 구도가 자신을 겨냥한다고 본다.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이 구도에 가담한 것은 심각한 일이다. 수교 이래 경주해온 한국 견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러시아처럼 바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중·러의 외교 스타일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러시아 외교는 대증적이고 공세적이다. 외교와 군사적 수단을 배합하여 치고 나간다. 바둑으로 치면 싸움 바둑이다. 중국은 은근히 압박 구도를 형성하고 꾸준히 밀어붙여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접근을 선호한다. 세를 중시하는 바둑에 가깝다. 한편, 중국은 즉각적인 강성 대응이 한국을 더욱 미국 쪽으로 모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진 듯하다.

요컨대 중국도 한·미·일의 움직임에 대항하고자 부심 중이며, 일단 한국에 묵직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친미 선회를 비판하면서 APEC 계기 정상회담에 불응하거나 한국이 주최할 한·중·일 정상회담 과정을 지연시키는 식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한국이 원하는 바를 원하는 시점에서 해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군사 측면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와 연합 훈련을 하면서 우리의 방공 식별 구역에 무단 진입하고 있다.

이처럼 북·중·러는 나름의 방식으로 한·미·일 결속에 대응한다. 물론 이들 간에 한·미·일과 같은 연대는 없고, 상호 미묘한 입장차가 있다. 이것이 원심력으로 작용할 소지는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북·중·러에게 미국 주도의 역내 안보 연대에 대항하는 것은 공동의 이해라는 점이다. 이것이 강한 구심력이다. 지금 중·러 유대가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도 이런 구심력을 말해 준다.

앞으로도 한·미·일 안보 협력은 계속 진전할 것이므로, 북·중·러가 3자 연대는 아니더라도 각자 또는 양자 형태로 맞대응을 지속할 소지는 크다. 그렇게 되면 한·미·일 중에서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질 나라는 한국일 것이다. 북·중·러와의 관계가 악화하면 비핵 평화 통일의 길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이 고심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북·중·러의 공동 이해나 반작용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아마도 북·중·러 사이의 구심력보다 원심력 위주로 사안을 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분위기로부터 한국이 중국의 대러 견제 심리를 활용하여 러·북 연대를 제어할 수 있다는 이이제이식 접근이 나온다. 또 한국이 한·미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고양된 입지에서 한·중, 한·러 고위급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면 된다는 태평한 순차적 접근도 나온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활용할 중·러 간 간극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 미·중, 미·러 대립이 첨예한 시대에 한·미 및 한·미·일 관계 강화는 그 자체로 한·중, 한·러 관계에 악재가 되기에 십상인데 순차적 접근이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대미 공조 수위는 어느 정도이고, 대중·대러 외교 공간은 어느만큼인지가 포함된 한국형 좌표를 갖고 미·중·러와의 관계에 총체적으로 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중·러가 진지한 대화에 응할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 외교는 캠프 데이비드로 하나의 분수령을 넘었다. 이는 불가피하게 북·중·러발 기회비용을 유발한다. 이에 잘 대처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