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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히키코모리, 중년 히키코모리 됐다…日 실책 뭐길래 [잊혀진 존재 3-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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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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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회사에 취직했던 이유진(26)씨는 초봉으로 월 18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위경련·우울증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지고, 이를 못마땅해하는 상사의 눈치가 신경 쓰여 직장을 그만뒀다. 그 뒤 1년 째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빼곤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씨는 서울시에서 지원해주는 월세 지원금 20만원과 부모님이 보태주는 용돈 55만원(+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비와 약 값도 한 달에 5~10만원 정도 나온다. 이씨는 “약을 끊으면 고립이 심해지고, 다시 병원에 가면 평생 이렇게 시간과 돈을 쓰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어 우울하다”고 말했다.

청년 고립 사회적 비용 7조

 이처럼 청년들의 고립 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연간 7조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8월 발표됐다.(청년재단) 이는 2019년 고립·은둔 청년 규모 추산치인 34만 명(3.1%)을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다. 책임연구자인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 변수를 고려해 2019년을 기준으로 삼았다”며 “2022년 추산치인 54만 명(5%)으로 치환하면 이보다 큰 11조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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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연간 약 6조 7000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국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인 약 3700만원을 전국 고립·은둔 청년 규모에 곱한 값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도 고립·은둔 청년 중 ‘지난 1주간 돈을 벌기 위해 1시간 이상 소득 활동을 했다’고 답한 사람은 47.2%에 그쳤다. 이마저도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물류센터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이 대부분이었다.

또 연구팀은 잠재적 비출산으로 인한 손실 비용도 계산했다. 고립된 청년일수록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자녀의 생애 기대소득까지 합쳐 연간 125억, 총 1조 343억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최 교수는 “다양한 관계를 맺었을 때 사회적 자본이 나오는 건데, 고립 청년들이 늘어나면 저출산 같은 사회 문제가 심화되고 국가 경쟁력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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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기초생활보장·실업급여 등 정책비용이 2000억원, 질병으로 인한 건강비용이 293억원 들어갔다. 부모님한테 받는 용돈이나 사기 등 범죄 노출로 인한 비용은 제외했기 때문에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연구진들의 설명이다. 박주희 청년재단 사무총장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고립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 단기 비용은 증가하지만, 고립이 완전히 해소될 경우 1인당 연간 약 2200만 원의 사회적 비용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도 고립 문제 심각…영국은 ‘외로움부 장관’ 신설

영국의 한 공공 단체는 ‘행복 택시(Happy Cab)’를 타고 고립 징후를 보이는 이웃을 찾아간다. 영국 정부는 이런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500만 파운드(한화 약 82억원)을 지원한다. 영국 정부 홈페이지 캡처

영국의 한 공공 단체는 ‘행복 택시(Happy Cab)’를 타고 고립 징후를 보이는 이웃을 찾아간다. 영국 정부는 이런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500만 파운드(한화 약 82억원)을 지원한다. 영국 정부 홈페이지 캡처

 해외에서도 고립·은둔 청년을 방치하면 개인의 삶의 질만 추락하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 비용을 늘린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각국 정부는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사회적 고독을 담당하는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일본도 2021년 고독부를 신설했다. 외로움을 줄이는 일이 의료비는 물론 교통사고와 범죄, 자살을 예방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국은 ‘외로움에 대해 말하자(Let’s Talk loneliness)’ 캠페인을 벌여 시민들이 고립 경험을 공유토록 하고, 이들을 돕는 150여 개의 공공·민간·자선 단체 ‘태클링 론리니스 네트워크(Tackling Loneliness Network)’를 구축해 500만 파운드(한화 약 82억원)를 지원한다. 한 단체는 지원금으로 ‘행복 택시’를 구매해 고립 징후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이들을 택시에 태워 바깥 구경을 시켜준다.

한편 전문가들은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예방책으로 잘못 인식돼 대상자들을 오히려 더 깊은 은둔에 빠트린 실패한 정책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 이지메(왕따) 등 ‘등교 거부 학생’으로 히키코모리 문제를 처음 인식해 1990년대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지원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50~60대 중장년 히키코모리로 이어졌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히키코모리의 규모도 줄지 않아 전국 14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핀란드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인 아웃리치(outreach) 사업 진행 과정. 사진 아웃리치청년사업·워크숍활동연합회 홈페이지 캡처

핀란드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인 아웃리치(outreach) 사업 진행 과정. 사진 아웃리치청년사업·워크숍활동연합회 홈페이지 캡처

핀란드의 아웃리치(outreach) 청년 사업도 최근 참고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별로 ‘청년 워크숍’을 마련해 사회생활 기술 학습, 노동 시장 참여 준비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중앙 정부는 청년법에 근거해 각 지역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프로그램은 민간 기관이 주도한다. 또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고립감이 찾아오면 멘토 역할인 ‘청년 사업가’에게 다시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런 공간에서 고립·은둔 청년들이 가족 돌봄 청년이나 다른 유형의 취약 청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한다면 이들을 탈출구로 안내하기 더 용이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첫 중앙정부 대책…시작은 ‘고립 징후’ 청년 발굴

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열린 제11차 청년정책조정원회에 참석해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열린 제11차 청년정책조정원회에 참석해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총리 주재 청년조정위원회를 열고 처음으로 중앙 정부 차원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책 내용은 고립·은둔 징후가 나타나는 청년을 조기에 포착하고, 오프라인 공간 ‘청년 미래 센터’를 설치해 심리상담, 자조 모임, 자기계발·진로 탐색 등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청년 도전 지원 사업 등 취업 연계를 통한 일 경험 미리 하기 지원도 포함됐다. 내년 예산 13억 원이 투입된다.

장영진 복지부 청년정책팀장은 “예산은 전국 4개 지역 청년 미래 센터에서 일할 32명의 전문 인력을 뽑는데 가장 먼저 쓰일 것”이라며 “정신건강요원,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 처우 수준과 자격 기준을 설계하는데 가장 공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2년간 시범사업을 통해 적정 인력 규모 등을 검토해 향후에는 민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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