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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도 안 나오는 초위험군, 온라인 조사로 500명 더 찾았다" [잊혀진 존재1-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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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4일 오후 세종시 국책연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4일 오후 세종시 국책연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고립·은둔 청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의 총합이다.”

첫 전국 단위 고립·은둔 청년 실태 조사를 총괄한 김성아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내린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대한 진단이다. 그는 “이 문제를 완화하는 건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지난 5월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전체 고립·은둔 청년의 규모를 54만 명으로 추산한 데 이어 이번 전국 실태 조사를 이끌었다. 그는 “OECD 지표 중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친구나 친지가 있냐’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항목에서 한국이 꼴찌(2020년 기준 끝에서 두번째)인 것을 보고 ‘고립’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를 지난 4일 오후 세종 국책연구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국 단위 첫 실태조사였다.
잠재된 고립·은둔 청년들의 존재와 실태를 확인하고 정책적 지원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다. 조사에 앞서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울 거다. 발굴이 어려울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립·은둔 청년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반복된 연구를 통해 추정돼 왔지만,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또 청년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지를 확언하기 어려웠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청년이 조사에 응했고 도움을 원했다. (조사에 응한 2만1360명 중에 1903명이 지원에 필요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했다) 일각에서는 ‘스스로 원해서 은둔하는 것 아니냐’, ‘의지가 부족한 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혼자서는 어렵다고 호소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온라인 조사 방식을 택한 이유는 
그동안 고립·은둔 청년의 숫자를 추계하기 위한 방문 조사가 수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립·은둔 상태인 청년들은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았고, 문을 열더라도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피조사자의 특성상 방문 조사 방식은 오히려 누락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온라인 조사를 설계했다. 이 방법이 통할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방문식 조사 (‘청년 삶 실태 조사’)에선 ‘방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는 초고위험 청년이 4명밖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번 조사에선 504명이 확인됐다. 
가장 놀랐던 조사 결과는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눈물이 났다. “세수나 양치, 목욕이나 샤워를 얼만큼 자주 합니까”라는 질문에 “한 달에 한 번 한다”고 답한 청년이 100명 정도 됐다. 그 100명이 이 조사의 응답을 전부 다 완료했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웠다. “정부에서 어떤 걸 도와주면 좋겠습니까”라는 주관식 질문에도 70~80% 정도의 청년이 답을 적었다. 3000자 이상 글 쓴 청년도 정말 많았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내용도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구나’ 생각했다.
고립·은둔 청년이 많아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응답 청년 중 75% 정도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일반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2~3%밖에 안 되는 항목이다. 엄청난 숫자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청년 4명 중 1명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립·은둔 청년 5명 중에 1명이 자살을 시도한 꼴이다. 죽음이라는 결과에 도달하면 ‘청년 자살률’ 혹은 ‘청년 고독사’에 잡힌다. 본인을 ‘쓰레기 같다’고 묘사한 사람도 많았다. 이건 사람을 살리는 문제인 것 같다.
우려하는 점이 있다고. 
‘묻지마 범죄’들을 계기로 고립 문제가 부각됐는데, 한두 사례만으로 과잉 해석되는 건 경계할 일이다. 고립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는 확인된 바 없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몇몇 사건에서 확인된 범죄자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고립·은둔 청년은 타인보다 스스로를 탓하는 특성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낙인을 통해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은둔이나 고립은 변화할 수 있는 일시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정책도 범죄 예방책으로 잘못 인식돼, 이들을 오히려 더 깊이 은둔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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