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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립 청년 방치하면 80대 부모가 50대 자녀 부양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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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39세 5%인 54만 명이 고립·은둔 생활 충격

정부 지원책 환영, 때 놓친 일본 전철 밟지 않아야

2000년대 중반 한국 언론은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를 앞다퉈 소개했다. 1990년대의 일본 경제 추락으로 구직을 포기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는 기사였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히키코모루라는 단어를 명사형으로 바꾼 신조어였다. 한국 학자들은 이를 ‘은둔형 외톨이’로 번역했다. 국내에도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서 온라인 게임만 하는 청소년과 잇따른 취업 실패 뒤 사회생활을 포기한 청년들이 늘면서 이들의 고립·은둔이 일본처럼 국가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진지한 대책 논의는 드물었다. 은둔형 외톨이가 저지른 범죄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사회적 고립 문제가 잠시 대두했다가 이내 관심이 줄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39세 국민 중 고립·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약 54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당 연령대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한다. 고립·은둔 경험이 있거나 현재도 그런 생활을 하는 2만여 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더니 75.4%가 대졸자였다.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는 5.6%였다. 고립·은둔 기간은 1∼3년이 26.3%로 가장 많았는데, 10년 이상 됐다고 답한 젊은이가 6.1%였다. 고립·은둔 청년 네 명 중 세 명꼴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생활을 포기한 젊은이가 는 것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취업난과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의 심리적 부적응 등이 원인이다. 전산화·자동화 등으로 기술과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워졌다. 청년들의 고립·은둔을 그들의 능력과 자세에서 비롯된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제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은 비록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는 청년들이 도움을 요청할 창구를 만들고, 4개 지역에 전담 지원센터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2년간 여러 시도를 한 뒤 효과가 확인된 정책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다듬어지길 기대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8050문제’라고 불리는 사회적 난제가 조명받고 있다. 50대의 자녀를 부양하는 80대의 부모가 많아서 생긴 일이다. 90대 부모가 60대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도 많아 ‘9060문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약 30년 사이에 이렇게 됐다. 일본 정부가 나름의 대응을 했지만 충분치가 않았다. 우리도 이대로 가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일본보다 늦었기에 더 나쁜 결과를 마주할 수도 있다. 청년들이 사회로 나와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는 것은 인구 절벽 문제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