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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기현 대표 사퇴, 여당의 진정한 환골탈태 계기 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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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 달도 못채우고 물러나, ‘인위적 대표’의 예정된 퇴진

쇄신을 향한 대통령과 친윤 주류의 향후 호응이 관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어제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더 이상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면서 “오늘부로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도부와 영남 중진 등에 희생을 요구한 지 40여 일 만이다. 이틀 전인 11일에는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여당의 ‘투 톱’이던 이들의 퇴진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절대 열세에 몰렸던 여당은 친윤·영남 중진들의 호응 여하에 따라 쇄신의 동력을 확보하고 반전을 꾀할 계기를 잡게 됐다.

김기현 대표의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는 10·11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대대적 쇄신을 다짐하며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전권을 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당 주류의 험지 출마 등 자신을 겨냥한 쇄신 요구는 일축했다. ‘윤심’은 자신에게 있다며 혁신위 힘빼기에 앞장섰다. 그 결과 혁신위가 빈손으로 조기 종료되면서 여당의 지지율은 더욱 하락했다. 내년 총선에서 서울 49개 지역구 중 6곳을 빼곤 전패한다는 관측이 당 내부에서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취임한 지 열 달도 못 돼 그가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건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심 대신 자기 뜻만 따르는 여당 지도부를 선호한 게 핵심 원인이다.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 여권 인사들은 3·8 전당대회에 도전했다가 용산의 철퇴를 맞았다.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실의 전대 개입을 비판했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는 극언을 듣고 물러서야 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친윤 의원들의 연판장 포화를 맞고 출마를 포기했다. 반면에 지지율이 최하위였던 김기현 대표는 여론조사 대상자를 ‘당원 100%’로 바꿔주는 등 친윤계와 대통령실의 묻지마 지원에 힘입어 무난히 당선됐다. 선생님이 개입해 가장 인기 없지만 말은 잘 듣는 학생을 반장으로 만든 격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표를 옹립한 국민의힘이 ‘용산의 거수기’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잼버리 파행과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을 거치면서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속속 드러났지만, 당은 쓴소리 대신 대통령실 엄호에만 바빴다. 이러니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는 날로 멀어졌고 당도, 대통령도 지지율이 30%대에 고착되는 비극을 맞은 것 아닌가.

이제 김 대표가 물러난 만큼 국민의힘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인사로 리더십을 신속 정비하고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에게 민심의 쓴소리를 그대로 전하고, 국정 난맥상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실 인사들을 교체해 쇄신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여당 대표의 조기퇴진 원인을 성찰하면서 국정 스타일의 혁신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