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 황금자씨 쌈짓돈 4000만원을 장학금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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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50㎝가 되지 않는 작은 키에 기구한 세월의 흔적인 듯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의 황금자(82.사진) 할머니는 별 말이 없었다.

그저 "이왕 기부하기로 한 거 표시나게 쓰고 싶다"며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종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 할머니가 자신에게 지급되는 종군위안부 생활안전지원금 등을 아껴 모은 4000만원을 28일 형편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았다. 황 할머니는 보증금이 206만원에 불과한 서울 강서구 등촌3동 11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황 할머니의 수입은 매달 74만원씩 지급되는 종군위안부 생활안전지원금과 국민기초수급대상자 생계비 36만원 등 모두 110만원이다. 황 할머니는 이중 아파트 관리비 4만여 원과 각종 공과금, 식재료비 등 최소한의 생활비 30여 만원을 뺀 나머지 70여 만원을 매달 꼬박꼬박 모아 왔다. 안 입고 안 먹고 5년 이상 모은 돈을 아낌없이 사회에 내놓은 것이다.

황 할머니는 "나는 우리나라로부터 크게 혜택을 받은 것도 없고 불행하게 살았지만 젊은 학생들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그래서 어렵게 모은 돈을 사회에 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를 하다가 열일곱 살 무렵 일본군에 끌려 흥남의 유리공장에서 일하다 20세가 되던 해 간도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모살이밖에 없었다.

호적에는 남편이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끔직한 위안부 경험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온전하게 기억을 하지 못한다. 황 할머니는 아파트 인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일본군의 함성으로 착각, 학교와 동사무소를 찾아가 항의까지 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황 할머니가 장학금을 내놓은 데는 강서구 등촌3동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김정환(41) 사회복지사의 힘이 컸다. 황 할머니의 신세 한탄을 참을성 있게 들어줘 마음을 얻은 김씨는 "내가 죽으면 남은 돈은 자네가 가져라"는 황 할머니의 말에 "그러실 거면 차라리 좋은 일에 쓰셔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황 할머니의 재산은 재단법인 강서구장학회에 전달됐다. 강서구장학회 기금은 황 할머니의 기부로 기금이 3억4000만원으로 불었다. 장학회는 매년 한 학생에게 '황금자 여사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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