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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싱어 이동규 "사람들이 오페라 벌레에 많이 물리기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카운터테너 이동규. 13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해외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카운터테너 이동규. 13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해외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 나왔나.” 심사위원부터 동료 출연자까지 물었다. 카운터테너 이동규(45)는 JTBC 팬텀싱어4에 출연하며 이런 말을 숱하게 들었다 했다. 이미 세계 무대에서 명성이 높은 성악가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했고 빈ㆍ함부르크ㆍ베를린ㆍ바젤ㆍ마드리드 등 중요한 무대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대중적 프로그램에 나가면 클래식 다시는 못할 수 있다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돌아올 수 없을 수 있다고.” 그는 팬텀싱어 전체에서 최고령 기록을 세우며 결국 출연했고, 출연자들은 “업자가 나와도 되나”라며 술렁였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인터뷰 #"오페라의 재미와 충격으로 사람들 끌어들이고파" #바로크와 현대의 낯선 오페라 전문

방송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둘이었다.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겠어서.” 그리고 “청중을 오페라로 끌어당기고 싶어서”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 이탈리아 칸초네, 양희은의 노래 등을 선보이며 팀 ‘포르테나’로 준우승을 했다. “경연은 의외로 쉬웠다. 19세부터 서너 시간씩 오페라를 했었는데 여기에서는 한 곡씩만 부르면 되니까.”

카운터테너 이동규. 13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해외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카운터테너 이동규. 13세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해외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팬텀싱어로 대중에 알려지게 된 이동규는 어쩔 수 없는 오페라 가수다.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는 “오페라는 나를 살려준 장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연기를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포기 못 한다”고 했다. 또 “지금도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럽 무대의 오페라 출연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흔히 말하는 '오페라의 대중화'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싶은 오페라는 흔히 알려지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나오는 오페라들은 대부분 음악계에서도 희귀본에 가까운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그는 8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 ‘라 칼리스토’에 출연했다. 드물게 공연되는 작품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오페라다. 뉘른베르크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인 연출가 옌스-다니엘 헤르초크는 이 1651년도 작품을 코믹하게 비틀고 청소부 역할에 이동규를 캐스팅했다.

이동규가 꾸는 꿈은 이런 낯선 작품에 새로운 청중이 유입되는 것이고, 조금씩 현실이 되는 중이다. “뉘른베르크에 저의 한국 팬 몇 분이 함께 오셨더라. 내 공연을 보기 위해 2박 3일로 머물다 간다 했다.” 그는 여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그분들이 물론 처음 보는 작품이고 모르는 음악인데, 다 이해가 된다고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고. 이런 게 가능하다.” 그는 내년 6월 프라하에서 죄르지 리게티의 오페라 '르 그랑 마카브르'에 출연하고 2년 후에는 도르트문트에서 새로운 위촉 오페라에 출연한다.

이런 그의 ‘낯선 오페라’ 리스트는 오래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된다. 카운터테너라는 영역의 특성이다. 가성으로 여성만큼 높은음을 내는 카운터테너는 바로크 시대에 가장 성행했다. 그래서 18세기 이전의 오페라 작품이 많다. 한편으로는 현대 음악가들이 탐내는 영역이다. 이동규의 말처럼 “기묘하게 끌리게 하고, 환상과 신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프란체스토 카발리의 1651년 작품 '칼리스토'를 현대적으로 연출한 뉘른베르크 오페라 극장의 공연 장면. 가운데가 이동규. 사진 뉘렌베르크 오페라 극장

프란체스토 카발리의 1651년 작품 '칼리스토'를 현대적으로 연출한 뉘른베르크 오페라 극장의 공연 장면. 가운데가 이동규. 사진 뉘렌베르크 오페라 극장

그는 “세계 초연 작품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 7~8개 정도의 동시대 작품의 초연에 참여했다”고 했다. 20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안톤 체호프 원작의 ‘세 자매’를 모두 카운터테너가 맡은 초연 작품에 출연했다. 카운터테너 중에서도 메조 영역인 이동규는 치마 바지를 입고 둘째 올가 역할을 맡았다. “지금 유럽에서는 카운터테너를 활용한 파격적 연출이 유행하고 있다. 바로크 작품에서도, 현대 오페라에서도 그렇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연기를 좋아했던 그에게 오페라 무대만 한 놀이터가 없다. 눈치 보지 않고 뛰어노는 성악가다. “오페라 무대에 한 번 들어가면 무대 세트부터 훑어본다. 어떻게 만들었고 움직이는지 보고, 연출가들에게 무대를 배운다.” 이동규는 “지금까지 나의 멘토들도 다 연출가”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오페라에 빠지는 경험을 그는 “오페라 벌레에 물렸다”고 표현하고 “많은 사람이 그 벌레에 물리게 하고 싶다”고 했다.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오페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예쁜 드레스 입고 나오는 그런 작품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크를 현대화시키는 파격적인 연출을 할 수도 있고, ‘카르멘’에서 남녀를 바꿔 충격을 줄 수도 있다.” 방송에 나와 노래하는 이동규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오페라 무대들이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은 그는 “언젠가는 연출을 하고 싶다”며 “언제까지 노래만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웃었다.

이동규의 국내 무대는 우선 이번 크리스마스에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함께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노래한다. 본격적 활동은 내년부터다. 9월 한국 단독 공연 및 투어, 또 음반 발매가 예정돼 있다. “비발디부터 팬텀싱어에서 불렀던 노래까지 다양하게 녹음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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