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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외길 80년 장혜원, “태어나기 전부터 피아노가 기다렸다”

중앙일보

입력

피아노 인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장혜원 이화여대 명예교수. 사진 장혜원

피아노 인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장혜원 이화여대 명예교수. 사진 장혜원

 “전쟁 중에도 어머니는 방문에 바르는 커다란 창호지에 피아노 건반을 그리셔서 방바닥이나 밥상 위에 올려놓고 제가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피아니스트 장혜원, 80주년 기념 음악회 #"굶는 사람도 많았던 시대의 음악적 열정이 지금까지 이끌어"

장혜원(85)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의 기억이다. 11세일 때 일어난 6ㆍ25 전쟁 중에 피난지 대구에서도 피아노를 연습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꼭 80년이 됐다”고 했다.

장 명예교수는 한국 피아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4년 독일 정부의 국비 장학생(DAAD)의 한국 1호 음악 장학생으로 선발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학했다. 어렵던 시절 흔치 않은 유학생 음악가였고 귀국 후 손꼽히는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1973년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와 테너 프랑코 코렐리가 중앙일보 초청으로 내한했을 때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한국음악학회 회장을 지내고 한국피아노학회를 설립했다. 1980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음반사 낙소스와 계약했으며, 여기에서 녹음한 음원이 영화 ‘툼레이더’ ‘캐치미이프유캔’ 등에 쓰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80년 전 피아노 인생의 시작을 ‘대청마루에 놓였던 피아노’에서 기억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집에서 피아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어머니가 딸이 나오면 시키겠다고 놓으셨던 악기였다.” 그렇게 다섯 살에 건반 앞에 처음 앉았고, 집 안의 축음기에서는 늘 베토벤ㆍ슈베르트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195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정식 데뷔했다.

“굶는 사람도 많았던 시절 한국에 어떻게 그렇게 음악 애호가가 많았을까. 그 시절 그들과 함께 한 음악에 대한 갈구로 지금까지 왔다.” 장 명예교수는 “데뷔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살기도 어려운 시대였는데 명동 국립극장이 꽉꽉 찼다. 음악가들은 악보도 구하기 어려워 해외에서 한 부가 들어오면 서로 빌려 쓰던 때였다. 하지만 얼마나 음악에 대해 뜨거웠는지 모른다.” 그는 또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마리아 칼라스,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같은 음악가가 연주하면 밖에서 기차 소리가 방해해도 모두가 숨죽여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얼마 전에도 대만에서 독주회를 하고 왔다”고 했다. 한국과 독일의 동요ㆍ민요를 모티브로 작곡가들에게 의뢰한 곡을 모으는 작업도 한창이다. “한국ㆍ미국ㆍ싱가포르ㆍ대만의 작곡가들이 써 보낸 곡이 총 45곡이다. 내년 내로 100곡을 모으려 한다.”

이달 여는 80년 기념 공연에서도 이러한 창작곡을 들려준다. ‘오빠 생각’ ‘새야새’ ‘봄바람’ 같은 곡으로 만든 작은 피아노 협주곡들이다. 장 명예교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타오니 피아노 대국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음악을 즐기고 노래하는 문화가 있어야 진짜 음악 강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쉽고 편한 노래에서 시작하는 작품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스카를라티·피에르네의 작품도 연주하는 이번 공연은 10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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