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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39% 증원한 美…의협이 먼저 "전공의 1.4만명 늘려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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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에서는 모두가 진정으로 의사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의과대학도, 의사협회도 전공의를 늘리는 것을 지지한다.”

마이클 딜 미국의과대학협회(AAMC) 인력연구 이사는 지난달 30일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는 미국의 의사 현황과 의대 정원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마이클 딜 이사를 전화 인터뷰했다. 미국은 의사 부족 국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2023)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는 2.7명이다. 한국(2.6명)처럼 OECD 평균(3.7명)을 한참 밑돈다. 미국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그동안 의대 정원을 늘려왔다. 2002년 1만6488명에서 꾸준히 늘려 올해 2만2981명으로 39.4% 늘렸다. 그새 30여개 의대를 신설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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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족하다. 고령화로 인한 수요 증가 만큼 충분히 늘리지 못한 데다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많아서다. AAMC는 2034년 최소 3만7800명, 최대 12만4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향후 7년간 1만4000명의 전공의 수련 비용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전공의 부족 해소법’의 의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의사협회(AMA)도 같은 입장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3일 제시 에렌펠 AMA 회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조슈아 젬빅 AMA 홍보 담당자는 지난 10월 제시 에렌펠 회장의 대국민 연설문을 인터뷰 대안으로 제시했다. 에렌펠 회장은 연설문에서 “이미 수백만명이 의사 부족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상황이 훨씬 더 악화할 것”이라며 “의사 부족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촉구했다. 그는 “미국의 모든 국민이 필요할 때 돌봐줄 의사를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공의 수련 기회 확대, 외국 의사 비자 간소화 등을 요구했다. 둘 다 의사 증원의 핵심 대책이다.

AAMC 마이클 딜 이사는 “미국에서는 의사 부족에 모두가 동의한다”며 “의사 파업과 같은 강한 반대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마이클 딜 이사와 일문일답.

과거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한 적이 있나.
“향후 의사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AAMC는 지난 2006년 의대 입학 정원을 2002년 대비 30% 확대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2018년 무렵 해당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고, 그 이후로는 정원 확대를 요구한 적은 없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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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의대 정원만큼 레지던트(전공의) 자리가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의대 졸업 후 전공의 수련을 마쳐야만 진료할 수 있다. 의대 졸업생이 아무리 늘어도 전공의가 늘지 않으면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다. 전공의 자리를 늘리는 게 급선무다.”

미국은 인건비 등 전공의 수련 비용(인당 연간 5만~7만달러)의 70%가량을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메디케이드(한국식 의료급여)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연 150억 달러(약 20조원) 이상을 지원한다. 이게 늘어야 전공의가 늘어나는 구조다. 한국은 정부 예산이나 건강보험에서 전공의 양성 비용을 거의 대지 않는다. 미국은 균형예산법(Balanced Budget Act)에 따라 연방정부가 전공의 수련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제한돼 있다. 그래서 1997~2002년 전공의가 0.1% 증가하는 데 그쳤고 이후에도 미미하게 늘면서 매년 수천 명의 전공의 지원자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3월 총 4만8156명의 지원자가 4만375개 전공의 자리(1년차 3만7425개, 2년차 2950개)를 두고 경쟁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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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은 누가 결정하나.
“대학이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기본적으로 민간의 노력에 의해 정해진다. 일부 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나.
“민주·공화당이 법안을 지지한다. 그러나 의회에는 정부 자금을 두고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런 탓에 (두 정당이) 아직 전공의 부족 해소법에 투표하지 않았다(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의미). 그래도 최근 몇 년 의회가 소폭의 자금 지원을 늘린 적이 있다.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의사들이 의사 확대에 집단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적 있나.
“과거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의사단체를 포함해 모두가 진정으로 의사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 의사들은 의사 부족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은데, ‘수익 감소를 걱정해 공급을 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각이 있을 것 같다.”
미국의학대학협회(AAMC) 마이클 딜 인력연구 이사. 사진 AAMC

미국의학대학협회(AAMC) 마이클 딜 인력연구 이사. 사진 AAMC

한국 의사협회는 ‘의사가 늘면 의료비가 증가한다’고 우려한다.
“그 주장은 대다수 의사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를 둔 것인데, 그들은(한국 의사들은) 정말 자신을 그렇게 과소평가하는지 묻고 싶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대해 우려한 적이 있지만, 큰 이슈가 아니었다. 사실 어떤 치료가 진짜 필요한 치료인지, 과잉진료인지는 주관적인 영역이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의사의 직업윤리에 달린 문제다. 한국 의협의 주장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불필요한 치료를 강요할 것이라는 뜻인지 궁금하다.”
AAMC의 의사 수급 추계가 신뢰받나. 
“우리는 단 하나의 숫자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최소·최대 부족치를 제시한다. 우리의 예측은 의회에서 법안을 논의할 때 사용할 정도로 신뢰 받는다. 연방정부 전망치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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