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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대기 쳐진 500벌 과잠…이런 반발에도 전국 대학 '합칠 결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립부경대 전경. 부경대는 한국해양대와 통합논의를 공식화했다. 사진 국립부경대

국립부경대 전경. 부경대는 한국해양대와 통합논의를 공식화했다. 사진 국립부경대

“두 대학이 통합하면 해양과학 분야를 선도하는 ‘해양 카이스트’가 탄생할 겁니다.”

장영수 국립부경대 총장은 최근 한국해양대와의 통합 논의를 공식화하며 이같이 밝혔다. 두 대학은 부산에 있는 국립대다. 부경대는 1941년, 한국해양대는 1945년 개교했으며 각각 수산과 해운ㆍ항만 분야 연구에 특화된 대학으로 발전했다.

부경대ㆍ한국해양대 통합 급물살, 왜?  

통합 논의는 두 대학이 교육부 글로컬대학 유치전에 탈락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구조조정 등 개혁안을 제출한 대학을 선정해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위기를 겪던 지방대는 이 사업을 따내는 데 사활을 걸었다. 올해 모집에 국ㆍ공립대 26곳과 사립대 64곳이 신청해 10곳이 선정됐다.

특히 이 가운데 4곳(부산대ㆍ부산교대, 충북대ㆍ한국교통대, 안동대ㆍ경북도립대, 강원대ㆍ강릉원주대)이 통합안을 제시해 선정되자 ‘통합안이 글로컬대학 유치 열쇠’라는 분석이 나왔다. 교육부는 내년에도 글로컬대학을 추가로 선정한다.

2023년 글로컬대학 최종 선정 어디가 됐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교육부]

2023년 글로컬대학 최종 선정 어디가 됐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교육부]

올해 결과를 확인한 뒤 부경대와 한국해양대 내부에선 통합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부경대는 본래 한국해양대와의 통합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한국해양대 쪽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해양대 관계자는 “‘특성화 대학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통합 반대 의견이 강했다”면서 “하지만 (정작 탈락 후엔) 통합안으로 글로컬대학 사업을 유치하면 연구 환경 개선 등 장점이 더 많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설문 조사에선 응답자 86.3%가 통합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해양대는 오는 11일 재학생 등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통합이 성사되면 입학정원 5000명, 재적학생 2만8000명 규모의 수산ㆍ해양 특성화 대학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학생들은 ‘과잠’ 던졌다

지난 8일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본관 앞에 금오공대와 통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벗어둔 학과 점퍼(과잠)가 나흘째 계단 가득 놓여 있다. 뉴스1

지난 8일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본관 앞에 금오공대와 통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벗어둔 학과 점퍼(과잠)가 나흘째 계단 가득 놓여 있다. 뉴스1

대구·경북에서도 경북대와 금오공대가 내년 글로컬대학 유치를 겨냥해 통합 논의를 했지만, 학생들의 극심한 반발로 중단됐다. 지난달 각 대학 총장이 만나 통합을 논의한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7일 경북대 본관 계단 앞에는 학생들이 패대기 친 500여벌의 과잠(학교ㆍ과 명칭 등이 새겨진 외투)이 널브러졌다. 학교를 상징하는 과잠을 벗어 던져 금오공대와의 통합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경금대(경북대+금오공대) 절대 안 된다’라는 팻말을 든 학생들 사이로 통합 추진에 반대하는 근조 화환도 눈에 띄었다.

부산대학교 - 부산교육대학교 글로컬대학 간담회가 지난 6일 부산대학교 새벽벌도서관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차정인 부산대총장, 박수자 부산교육대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송봉근 기자

부산대학교 - 부산교육대학교 글로컬대학 간담회가 지난 6일 부산대학교 새벽벌도서관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차정인 부산대총장, 박수자 부산교육대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송봉근 기자

이들은 지역 명문 국립대로 꼽히는 경북대가 다른 대학과 ‘한 수 접어주는’ 식의 통합을 추진하는 데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김상권(19ㆍ경북대 경영학부)씨는 “학교가 학생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졸속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며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경북대의 입시 경쟁률은 충분히 높다”고 주장했다. 재학생 박모(25)씨도 “금오공대와 통합하면 구미산단에 일자리가 늘 거라고 하지만, 경북대 학생들은 원치 않는다”며 “차라리 취업 관련 프로그램을 늘려 지원하라”고 했다. 결국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10일 “통합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경북대와 금오공대는 2007년에도 통합을 추진했지만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선정 대학들, ‘통합 진통’ 어떻게 넘었나

올해 글로컬대학에 선정된 학교들도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학내 반발을 겪었다. 부산대와 부산교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교대에선 특히 통합 이후 다른 학과 학생에 의한 ‘초등임용 자격침범’ 가능성이 제기되며 학생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충북대 학생들은 아예 ‘통합반대 학생연합’을 만들어 학교 안팎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통합으로 인한 교명 변경 등에 반대하며 심지어 충북대ㆍ한국교통대 졸업장을 각각 분리해 발행해줄 것 등을 요구했다.

2021년 4월 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부산교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차정인 부산대 총장의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 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부산교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차정인 부산대 총장의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에 성공한 대학들은 어떻게 했을까. 부산대와 충북대는 총장이 직접 나서 학생들을 만나 설득했다. 통합 논의기구에 반대쪽 학생들은 포함해 요구안을 수용하는 등 통합안을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나갔다. 이후 글로컬 대학 ‘선정’이라는 성과가 난 이후엔 갈등이 빠르게 봉합되고 있다고 한다.

충북대 관계자는 “교내 ‘통합 결사반대’ 등 현수막은 사라졌다”며“선정 이후엔 글로컬대학 유치의 장점이 학생들에게 부각되는 듯하다”고 했다. 부산대 관계자는 “선정 이후에도 부산교대 학생 및 실무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내년 4월까지는 구체적인 통합 방안을 담은 신청서를 교육부에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충북대와 한국교통대 통합을 반대하는 충북대 학생 연합이 지난 9월 12일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서 통합추진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현재 글로컬대학 선정 이후 반대여론은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충북대와 한국교통대 통합을 반대하는 충북대 학생 연합이 지난 9월 12일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서 통합추진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현재 글로컬대학 선정 이후 반대여론은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한편 교육부는 내년 1월 글로컬대학 2차 공모신청을 받는다. 4월 예비대학을 지정한 뒤 7월엔 본대학 지정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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