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압력에 중국 침체 계속, 글로벌 경기 제자리 걸음”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68호 04면

[2024 경제 전망] 경제 전문가 41명 설문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따른 고금리 환경, 중국의 두드러진 경기 침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까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전쟁…. 올해 글로벌 경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연초 정부의 ‘상저하고’(상반기엔 저조했던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세를 나타낸다는 것) 전망이 무색한 수치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로 이보다 높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각 제시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7%, 2.9%에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내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이번 주 주요 대학교 경제·경영학 전공 교수, 증권사 임원, 기타 국책·민간 연구기관 등의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가장 많은 51.2%는 내년 국내·외 경제가 올해보다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가 그만큼 어려웠으며 내년엔 올해보다는 상황이 나아진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드러지는 호황 등 극적인 반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34.2%는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14.6%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다. ‘호황’ 또는 ‘깊은 침체’ 등 극적인 상황을 예상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극적 상황 예측한 전문가 1명도 없어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경제에 가장 큰 위협 요소를 ‘인플레이션과 미국 등 각국의 통화 긴축’(63.4%), ‘중국의 경기 침체’(56.1%), ‘공급망 재편’(34.1%), ‘전쟁의 장기화’(12.2%)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그럼에도 경기가 조금 반등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완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내년에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이 있다”며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적 대립이 화해 모드로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 교수는 “이에 따라 기존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의해 발생한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 투입과 민간 투자도 증가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각국의 통화 긴축 완화 전망도 이 같은 조심스러운 낙관론에 힘을 실어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등 주요국이 내년 상반기 중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 긴축에 집중하다가 상반기 말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분석된다(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대(對)중국 수출이 -0.2%로 전월(-9.6%)보다 개선된 게 컸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글로벌 수요 정상화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특수, 공급망 다변화에 힘입어 내년 9~10%대의 명목 수출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반면 신중론을 제기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내년 상황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한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국내·외에서 진정되고 있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목표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한 이후에야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내년엔 민간 소비가 크게 증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올해 들어 1월 6.4%, 5월 4%, 10월 3.2%(이상 전년 동기 대비) 등으로 안정됐지만 아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인 2%엔 못 미치고 있다.

경기가 올해보다 조금 하강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소비 중심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 중”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에선 소비의 원천인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이 2020년 이후 감소세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상황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과거 통계로 볼 때 미국 가계는 기준금리 인상 뒤 12~20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를 가장 많이 줄였다.”

“수출 재정비·신산업 진흥 정책 시급”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은 “중국의 경우 내년 수출이 반등해 경제성장률이 다소 오르겠지만 글로벌 전체 성장을 이끌기엔 역부족”이라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글로벌 수요 자체가 정체·포화 단계에 진입해 앞으로 신흥시장 잠재 수요를 개발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의 의미 있는 성장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미국은 누적된 긴축 효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 중국은 부동산 등 건설 중심 성장의 한계 노출에 따른 구조적 하강이 예상된다”며 “한국은 순환적 경기 회복이 예상되지만 글로벌 전체로는 경기 둔화가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렇다면 미국은 언제 CPI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31.7%의 응답자는 ‘2025년’을 예상했다. ‘2025년까지 달성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17.1%나 됐다. 다만 ‘내년 4분기’(22%)와 ‘내년 3분기’(17%), ‘내년 2분기’(9.8%)를 예상한 응답자도 적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48.9%가 내년 중을 예측했다. 내년 중 물가 안정이 어렵다는 의견과 가능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을 예상한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내년 4분기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정책을 지속, (내년 중에는) 물가 하향이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내년 4분기를 예상한 신승진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식품·에너지 물가와 주거비를 제외한 초근원(supercore)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있고 공급망 차질도 정상화되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업의 완만한 회복에 따른 상품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내년 물가를 자극할 만한 변수를 ‘공급망’(58.5%) ‘유가’(56.1%) ‘전쟁’(34.1%) ‘시중 유동성’(31.7%) 등 순으로 꼽았다(복수응답).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이대로 괜찮을까. 오는 14일 기준금리 발표를 앞둔 미국은 현재 5.50%(상단 기준), 한국은 3.50%로 사상 최대 수준인 2%포인트 격차를 유지 중이다. 일각에선 외화 유출 우려를 계속 제기 중이지만 한은은 가계부채 뇌관 등을 고려, 기준금리를 올해 1월 이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은 ‘조금 우려되나 큰 문제는 아니다’(73.2%)라고 진단했다. ‘전혀 우려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9.8%를 차지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한국은 8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한·미 기준금리 격차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내년 상황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 속에 정부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경제 정책을 짜임새 있게 펼치느냐다. 응답자들은 한국에 가장 시급한 경제 정책 과제를 ‘수출 재정비와 신산업 진흥’(31.7%)으로 꼽았다. 이어 ‘저출산 고령화 대책’(26.8%), ‘가계부채 문제 해소’(19.5%) 등 순이었다. 박광기 소장은 “한국은 50여 년간 수출 주도의 제조업으로 압축성장했지만 지금처럼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글로벌 환경에선 과잉 공급이 초래되면서 과다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기업들의 생산성 저하와 부채 급증으로 이어진다”며 “전통산업에 묶여 있는 자본·노동력이 원활하게 첨단산업에 재배치될 수 있도록 정부가 물꼬를 터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고령화와 연금개혁의 절박함을 경고한 IMF 보고서의 상세 내용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 마련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설문에 응답해 주신 분(가나다 순)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성현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장,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춘원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장균 BX연구소장,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