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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복귀 힘들어, 중물가·중금리·중성장 시대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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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05면

2024 경제 전망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속도로, 어디까지 내릴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봇’(정책 전환)이 다가오면서 금리 인하 속도와 저점이 어디인가 또한 전 세계의 관심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체로 인상 때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연준은 지난해 3월 베이비스텝(금리를 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1년 4개월 만에 5.25%포인트 인상해 현재 금리는 5.25~5.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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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대 금융지주 바클레이즈는 4일(현지시간)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고, 2025년에도 1%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승 때의 절반 정도 속도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 월가에서는 좀 더 하락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해 연말까지 1.25%포인트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측대로라면 내년 말 금리는 4~4.25%가 된다.

월가, 내년말 금리 4~4.25% 예상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앞선 1일에는 글로벌 금융그룹 ING가 내년 2분기부터 0.25%포인트씩 6차례에 걸쳐 1.5%포인트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승 때와 비슷한 속도다. ING는 2025년에도 연준이 4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해 그해 말에는 금리가 2.75~3%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연준의 그간 행보와도 맞아 떨어진다. 연준은 1960년대 말, 70년대 중반과 후반,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최근 1년처럼 급격히 금리를 인상한 뒤 인상 못지않은 속도로 금리를 내렸다.

베트남전 패배 후유증 등으로 물가가 무섭게 뛰던 70년대 말에는, 당시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가 하루 만에 금리를 4%포인트 인상하기도 했는데, 이후 물가를 잡았다고 판단한 볼커와 연준은 인상과 비슷한 속도로 금리를 끌어내렸다. 연준은 이후에도 비슷한 행보를 했다. 조원경 유니스트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은 “물가 상승도 문제지만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부수적인 피해가 생기고,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물가 상승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볼커가 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많은 기업이 고금리에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이 워싱턴DC의 연준 건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미국의 지역 금융기관인 저축대부조합이 대거 자금경색 위기에 몰렸다. 미국 정부는 긴급 원조에 나섰고, 88년부터 91년까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해 정부 자금지원을 받아야 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이 벌어졌다. 당시 3% 선이던 금리가 14개월 만에 6%까지 뛰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신흥국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이때 큰 손실을 입고 외부 자금을 수혈해야 했다. 최근의 상황도 비슷하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올해 들어 은행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 3월 실리콘밸리 은행(SVB)을 시작으로 5월에는 229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퍼스트 리버퍼블릭 은행이 문을 닫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다. 지난달에는 시티즌스 은행이 문을 닫았다. 금융권의 연쇄 파산을 막고 경기 연착륙을 위해서는 내년부터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게 금융시장의 판단이다. ING는 “인플레이션 완화와 고용시장 냉각, 소비지출 전망 악화로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금리를 더 많이 내려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생산량 원상 회복 가능성 희박

그렇다면 금리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직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금리 여파로 커진 금융비용과 낮은 경제성장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로 인한 수출 위축 등으로 물가가 쉽게 잡히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 인하를 시작하게 되면 곳곳에서 숨통은 트이겠지만, 이것이 곧 과거 0%대 금리로의 회귀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했다고 해도 목표치 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전쟁이나 공급망 리스크가 해결될 때까지 중간 수준의 금리를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실질 중립금리’ 상승으로 금리 인하가 시작되더라도 ‘중물가-중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코로나19 이전 실질 중립금리는 0.5% 수준이었으나 10월 블룸버그통신이 진행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현재 실질 중립금리는 1% 이상일 것이라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2%라는 의견도 35%나 됐다. 백석현 신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중립금리가 1.5% 수준이라고 가정했을 때 목표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려면 기준금리가 3.5% 이상은 돼야 한다”며 “향후 물가와 금리 모두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중물가-중금리’가 이어지던 90년대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국은행도 지난 10월 “내년 이후 미국 경제는 5%대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했던 1990년대 중반(1995년 3월~1998년 11월)과 유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시기 미국은 경제성장률 하락과 고용시장 악화로 기준금리를 6%에서 4.75%로 인하했지만 98년까지도 물가상승률이 2%를 넘는 ‘중물가-중금리’가 3년간 이어졌다. 최인협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과장은 “지금의 경제 흐름이 90년대 중후반과 가장 유사하다”며 “코로나19 이전의 초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에서 ‘중물가-중금리-중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기조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중기(5년) 경제성장률을 1990년 4월 이후 최저치인 3.1%로 제시한 바 있다. IMF는 “인구 고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둔화하고 있다”며 “현재의 정책대로라면 글로벌 생산량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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