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詩)와 사색] 파사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8호 30면

파사드
박세미

벽에 문이 그려져 있다
손잡이가 그려져 있다
문을 열려고 하면 문은 열릴 것이다
믿으면서
벽 앞에 섭니다

거울 내부에서 당신이 나를 향해 걸어올 때
뒤돌아보지 않아야 하므로
『오늘 사회 발코니』 (문학과지성사 2023)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그는 현존하는 작가 중에서 가치 높은 작품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한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회화는 2018년 열린 경매에서 무려 1000억원이 넘는 금액에 거래된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몇 해 전 태블릿PC를 활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한 기자는 호크니에게 왜 전자기기로 그림을 그리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호크니는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늘 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 시의 제목인 파사드는 건축물의 정면을 칭하는 말입니다. 새로 문을 그리기에도 혹은 이 문을 열기에도 좋을 시기입니다.

박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