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詩)와 사색] 바람 부는 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9호 30면

바람 부는 날
신경림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멸치 국물 냄새가 난다
광산촌 외진 정거장 가까운 대폿집
손 없는 술청
연탄난로 위에 끓어 넘는
틀국수 냄새가 난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기차 바퀴 소리가 들린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래서
산동네 사람들은 꿈을 꾼다……
『가난한 사랑 노래』 (실천문학 1988)

바람이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상상해본다. 대기가 없는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 혹은 창문 하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밀실에서만 지낸 존재. 만약 그에게 바람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불다. 거세다. 잠잠하다. 연하다. 같은 어떤 표현도 동원할 수 없을 것이다. 바람을 알지 못하면 바람에 따르는 말들도 실감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입으로 조금씩 입김을 내보내 상대에게 닿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휘파람을 불어 바람 소리도 흉내 내보면 어떨까. 무릇 낯선 것일수록 더 살갑고 다정하게 다가가야 하는 법이니까.

박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