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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일 공백 깨고 시작된 '조희대 코트'…올 3월 각도 달라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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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히 초당(超黨)적인 동의 절차를 거쳐 주신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8일 국회가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를 임명하는 데 동의해, 조희대 전 대법관이 17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한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청문준비단을 꾸렸던 서울 서초구 오퓨런스 빌딩을 떠나며 “심기일전해 재판과 사법행정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법원장으로서의 공식 임기는 국회가 임명을 동의한 8일부터 바로 시작됐다.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로써 지난 9월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이후 75일 만에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해소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초 김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으나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임명에 이르지 못하면서 사법부는 전례없는 혼돈에 빠졌다. 조 대법원장은 초유의 대법원장 공석 사태 속에서 새로 찾은 인물이다.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가결이 선포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가결이 선포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대법원은 대법원장 취임식을 11일에 연다고 즉시 공지했다. 동의안 통과 후 5일 뒤 취임식을 가진 김명수 전 대법원장 때보다 급박하다.

대법원장 오니 대법관 가네…‘11명 대법관’으로 맞을 2024년 

신임 대법원장으로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인사(人事)다. 당장 24일 뒤 두 명의 대법관(안철상·민유숙)이 퇴임한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내일부터 당장 (대법관 제청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두 시간 뒤 대법원은 대법관 제청대상자 선정을 위한 천거 공고를 냈다. 12일부터 18일까지 대법관이 될 만한 사람을 추천받을 예정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고를 낼 만큼 시급한 사안이지만, 앞으로 남은 절차가 많다. 천거기간 종료 후 심사에 동의한 사람에 한해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추천위원회를 열어 제청한 뒤 인사청문회도 넘어야 한다. 조 대법원장은 “빨라야 내년 3월에야 (신임 대법관 취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도도 챙겨야하지만, 방향성도 살펴야한다. 김 전 대법원장 취임 이후 진보 성향 대법관이 다수 임명돼 ‘진보 우위’로 여겨지던 대법원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중도·보수 성향 대법관을 연이어 임명하며 이제 중도·보수가 절반을 넘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이 내년 1월 1일 임기를 마친 뒤 3월에 어떤 대법관들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대법원의 우향우 각도가 달라진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인기영합식 법원장 추천제’ 지적에…“개선” 약속한 조희대 

매년 2월 하는 법관 정기 인사도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법원장부터 정해야 한다. 15대 양승태 대법원장 때까지 법원장 지명은 대법원장의 몫이었는데, 16대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각 법원 구성원(법관·직원 포함)의 투표를 통해 원장 후보자를 압축하도록 했다. 그 결과 법원장의 조직내 통제력이 약화하면서 재판 지연 및 부실 재판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돼왔다. 조 대법원장이 청문회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 여러 폐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고, 제가 들은 바로는 개선해야 한다는 건 다 같은 생각인 것 같다”고 밝힌 만큼, 김 전 대법원장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법원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15대 ‘강한 행정처’→16대 ‘작은 행정처’→17대 조희대의 선택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대법원장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는 모습. 국회는 5일과 6일 조 대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 뒤 곧바로 동의 절차에 착수해 8일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성룡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대법원장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는 모습. 국회는 5일과 6일 조 대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 뒤 곧바로 동의 절차에 착수해 8일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성룡 기자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구성도 인사 문제다. 법원행정처는 법원 전체의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 등 대부분의 사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는 소위 ‘초엘리트 판사’로 선망의 눈길을 받았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시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김 전 대법원장이 바로잡겠다며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는 판사를 3분의 1 이하로 줄이는 등 기능을 축소했다. 일선 판사들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압력은 줄어들었지만, 반면에 사법행정 기능이 크게 저하됐단 비판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은 김 전 대법원장 때와 같은 규모로 행정처를 유지할지, 이전 규모로 복귀할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행정처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보면, 새 대법원장의 ‘그립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중 최우선 과제는 재판 지연 문제 해소

대법관·법원장·행정처·법관 인사가 당장의 문제라면, 재판 지연 해소는 임기 내내 해결에 매달려야 할 숙원과제다. 조 대법원장도 청문회에서 “국민이 사법부에 절실히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보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강구해야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국회에 계류된 법관 증원법(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 통과에 우선 힘쓸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 때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다시 들고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 역시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다음 주 취임식 나흘 뒤 열리는 15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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