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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해 공무원 ‘월북몰이’ 확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답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감사원 “전 정부 은폐·조작”, 당시 과정 공개

국민 생명 내팽개친 국가 범죄의 몸통 밝혀야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 북한군에 붙잡힌 사실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알았음에도 손을 놓고, 이씨가 피살돼 소각된 뒤에는 근거도 없이 ‘자진 월북’으로 몰았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실이라면 상상을 초월한 국기 문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어제 감사원에 따르면 국군 합동참모본부는 그날 오후 4시43분쯤 전날 실종된 이씨가 38시간 만에 북한군에 발견된 사실을 파악해 윗선에 보고했다. 그러나 문재인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관계 기관들은 방관만 했다. 국방부의 구출 작전, 통일부의 송환 노력, 해경의 수색 구조도 없었다. 특히 해경청은 이씨 표류 사실을 안보실로부터 전달받고도 수색에 나선 경찰 실무진에 알리지 않아 27㎞ 떨어진 곳에서 헛수고만 하게 했다.

이씨는 그날 밤 9시40분쯤 북한군에 사살돼 시신이 불태워지는 참극을 당했다. 그러나 안보실은 밤 10시쯤 이 사실을 파악했음에도 은폐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군과 국정원은 각각 관련 첩보 60건과 46건을 무단 삭제했다. 또 이씨 피살 반나절 뒤인 23일 낮까지도 ‘실종’ 상태라고만 알려 그가 살아 있는 양 국민을 속이기까지 했다.

최악의 대목은 이씨를 ‘자진 월북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안보실은 “자진 월북으로 원 보이스(한목소리)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려 관계 기관들이 이에 맞춰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합참은 어업지도선에서 발견된 슬리퍼가 이씨 것이란 증거가 없는데도 그가 맨발로 뛰어내려 20여㎞를 맨몸으로 수영했다는 황당한 보고서를 냈다. 해경도 월북과 배치되는 증거들은 배제하고 “도박 빚이 많았다”며 자진 월북자로 몰아갔다.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팽개치고 ‘월북자’ 낙인까지 씌운 정황이 확인됐으니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이와 관련해 서훈 안보실장, 박지원 국정원장, 서욱 국방장관(당시) 등이 수사를 받고 있지만 이런 엄청난 일을 그 윗선의 지시 없이 진행했을지 의문이다. ‘월북몰이’의 몸통이 누구인지 분명히 가려야 한다. 당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안보실이었고, 그 최고 지휘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씨 피살 3시간 전 상황을 보고받고도 심야 대책회의에 불참했고, 피살 사실을 보고받은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국민이 사살·소각되는데도 대통령이 잠만 잤다니 그걸 과연 누가 믿겠는가. 더구나 이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 보고·지시 내용은 15년간 열람이 금지돼 있다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이제라도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어떻게 보고받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