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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생 예산의 습관적 정치 쟁점 연계, 즉각 중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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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 예결위 여야 간사가 7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 예산안 2+2 협의체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 홍익표 원내대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송언석 의원. 연합뉴스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 예결위 여야 간사가 7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 예산안 2+2 협의체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 홍익표 원내대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송언석 의원. 연합뉴스

야당 탄핵 추진 등 정쟁에 국회 예산 심의 표류 중

정부도 ‘감액 한도 내 증액’ 원칙 흔들려선 안 돼

정쟁에 몰두한 국회가 민생의 엄중함을 외면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 2일)을 3년 연속 넘겼다. 어제 여야는 20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다시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야의 이견이 많은 데다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야당의 쌍특검법과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 등 3건의 국정조사 추진 등으로 여야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해져서다. 이러다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예산안이 가장 늦게 처리된 지난해 기록(12월 24일)이 깨질 수도 있다.

여야는 그간의 예산 협상 과정에서 준(準)예산이나 야당의 단독 수정안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이겠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이나 야당 단독 수정안 모두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연말까지 예산이 통과되지 않으면 신규 사업은 할 수 없고, 전년 예산에 준해 고정비만 지출하는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야당의 단독 수정안은 정부가 증액에 동의할 리 없으니 야당이 멋대로 칼질한 감액 예산안만 가능하다. 아무리 야당이 다수당이라지만 헌법이 정한 정부의 예산 편성권이 통째로 무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 그 뒷감당은 대체 어쩌려는 것인가.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예산 심의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야 모두 쌍특검법, 선거구 획정 등 다른 정치 현안과 예산 심의를 연계해선 안 된다. 예산 심의만으로도 갈 길이 멀다. 거대 야당이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면서 예산 심의는 그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안의 감액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야당은 6개의 상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파행된 3개 상임위를 제외한 국회 상임위의 증액 요구가 17조원을 넘는다. 연구개발(R&D) 예산, 원전·신재생에너지, 새만금, 지역화폐 등 소위 ‘이재명표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견해 차도 크다.

막판 예산 협상에 돌입한 여야에 촉구한다. 최대 쟁점인 R&D 예산의 경우 이미 대통령이 보완 입장을 밝힌 만큼 합리적인 선에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야당도 ‘이재명표 예산’을 비롯한 과도한 증액 요구를 접어야 한다. 여야 모두 예결특위 소(小)소위에서 벌어졌던 밀실 담합과 주고받기식 ‘쪽지 예산 거래(로그롤링·logrolling)’가 재연되지 않도록 자제하라. 정부 역시 ‘예산 감액 한도 내 증액’이라는 원칙을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

예산이 늦어지면 예산 배정 등 후속 작업과 지방정부의 예산 확정이 줄줄이 지연된다. 예산이 연초에 조기 집행돼야 재정 투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폴리코노미(Policonomy)’가 내년 세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한다. 제발 우리는 좀 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