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혁신위 42일 만에 조기해산…현실정치에 막힌 ‘주류 희생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오른쪽)이 7일 혁신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오른쪽)이 7일 혁신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끈 국민의힘 혁신위가 지난 10월 26일 출범한 지 42일 만에 ‘빈손’으로 해산했다. 활동 시한(12월 24일)보다 보름여 빠른 조기해산이다.

인 위원장은 7일 12차 혁신위 회의를 마친 뒤 “사실상 오늘 혁신위 회의를 마무리한다”며 “국민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해서 우리는 50%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50%는 당에 맡기고 기대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혁신위는 오는 11일 당 최고위에 지금까지 나온 혁신안을 종합해 최종 보고할 계획이다.

인 위원장은 회의에서 “정치가 참 어렵다”면서도 “이순신 장군과 하나님은 같은 말을 하셨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이라며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회의 뒤 브리핑에선 김기현 대표에게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개각을 일찍 단행해 좋은 후보가 선거에 나올 기회를 주셔서 대통령께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고 운을 뗀 그는 “두 번째는 김기현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이렇게 알아볼 기회를 주셔서 많이 배우고 나간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전권을 준다’고 해놓고선 희생 권고는 묵살한 김 대표에게 서운한 감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의원과 만나 혁신위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안 의원은 회동 뒤 취재진에게 “혁신은 실패했다고 본다”며 “저도, 인 위원장도 치료법을 각각 제안했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젠 김기현 대표와 당 지도부가 답을 내놓을 차례”라고 했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들어선 인요한 혁신위에 대한 당내 평가는 엇갈린다.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던 인 위원장은 출범 다음 날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등의 징계를 해제하는 ‘대사면’을 제안했다. 또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제주 4·3 평화공원을 참배하는 등 당 안팎의 ‘통합’ 노력으로 정치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지난달 3일 당 지도부·친윤 핵심 험지 출마론을 2호 안건으로 너무 일찍 꺼내 ‘과속’한 건 실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밑 숙성’을 거쳐 후반기에 희생 권고안을 냈더라면, 추후 공천관리위원회에 자연스레 인계하는 상황도 만들 수 있었을 거란 뜻이다.

다만 김기현 대표 등에 대한 희생 권고가 결국 공천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혁신위의 집요한 희생 요구가 결과적으로 당 공천 방향을 ‘희생’으로 정리해 놓은 셈”이라며 “당 대표 등 주류세력이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가 빈손 조기해산한 데 대해 당 지도부를 겨냥한 쓴소리도 나왔다. 수도권 지역 의원은 “‘전권을 주겠다’고 인 위원장을  불러놓고 ‘싫은 소리 한다’며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든 셈”이라며 “김기현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인 위원장이) 한 편의 개그 콘서트를 보여주고 떠났다”며 “기득권 카르텔에 막혀 좌절했지만 그대가 있었기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고 적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