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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돈줄 막은 법정금리 역설…대부업 이용자 3분의 1토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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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가 불법 사금융 엄단 방침을 밝히면서 법정 최고금리 현실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고금리 시기엔 법정 최고금리를 올려 대부업체 등의 대출 물꼬를 터줘야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리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6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주요 69개 대부업체의 지난 9월 말 기준 신규 대출액은 834억원이다. 지난해 1월(3846억원)과 비교하면 78.3%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부업체에서 신규로 대출을 받은 금융 소비자는 3만1065명에서 1만1253명으로 63.8%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업 대출 수요는 줄지 않았다”며 “하지만 현재 대부업체가 정상적인 대출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규 대출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조달 비용이 늘어난 상황에서 현재의 법정 최고금리(연 20%)보다 낮은 대출 상품을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법정 최고금리 어떻게 변했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 문턱도 못 넘는 서민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선 불법 사금융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금융연구원은 2021년 7월 이후 1년 동안 1만8000~3만8000명이 대부업 시장에서 쫓겨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2021년 7월은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하향된 시기다. 김강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 4일 보고서를 통해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대부업 시장 기능 위축 및 불법사금융 피해 증가 등 법정 최고금리 규제의 역기능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며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도입된 규제가 고금리 장기화 상황에서는 오히려 취약계층 금융 소외를 가속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환경 속에 불법 사채업자가 기승을 부리자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융당국은 물론 검·경과 국세청 등이 나서 불법 사금융 근절에 나섰다. 하지만 불법 사금융 이용자가 늘어나는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엄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안으로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 도입이 거론된다. 시장금리 상황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도 유연하게 오르내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대가 걸림돌이다. 법정 최고금리 조정은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해 국회 동의가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그간 최고금리 조정은 정부와 국회간 합의를 통해 결정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이 서민 이자 부담을 줄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 역시 법정 최고금리 인상에 긍정적이지 않다. 여당이 앞장서서 고금리 부담을 더 키운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도 올해 초에 이미 법정 최고금리 현실화를 검토했다가 무산된 상황에서 재차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대안으로 ‘우수 대부업자’ 제도 활성화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위법 사실이 없는 등 일정 조건을 채운 우수 대부업자에게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부업체의 저신용자 대출을 늘리기엔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도 소극적이다. 올해 3월말 기준 우수 대부업자가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자금 잔액은 1459억이다. 1년 전(2100억원)보다 30.5%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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