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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 AS 가능" 이 말에 속았다…판치는 중국산 짝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A씨(39)는 2021년 8월부터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짝퉁 골프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마루망·혼마 등 유명 브랜드로 위장했지만 가품 골프채였다. 세트당 평균 가격이 정품 대비 20~25% 수준인 450달러(59만원) 수준인 만큼, 정품으로 속여 팔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다.

세관의 감시는 지인을 동원해 우회하는 수법을 썼다. 세관에 따르면 지인 등을 동원해 개인통관부호를 확보한 A씨는 골프채를 반입하면서 이를 등산용 스틱, 스테인리스 파이브 등 비슷한 형태의 물품이라고 신고했다. 150달러 이하 자가사용 물품은 정식수입신고를 하지 않아도 돼서다.

6일 오전 인천본부세관에 수사당국이 밀수업자 A씨로부터 압수한 중국산 짝퉁 골프채가 쌓여있다. 전문기관인 스포츠산업기술센터이 스윙 로봇으로 짝퉁 골프채를 시험한 결과, 볼이 발사되는 각도는 정품의 73%에 불과하고 비거리도 10m가량 짧아 성능 차이가 컸다고 한다. 심석용 기자

6일 오전 인천본부세관에 수사당국이 밀수업자 A씨로부터 압수한 중국산 짝퉁 골프채가 쌓여있다. 전문기관인 스포츠산업기술센터이 스윙 로봇으로 짝퉁 골프채를 시험한 결과, 볼이 발사되는 각도는 정품의 73%에 불과하고 비거리도 10m가량 짧아 성능 차이가 컸다고 한다. 심석용 기자

A씨는 이런 식으로 밀수입한 짝퉁 골프채를 정품 중고 상품으로 위장해 국내 쇼핑몰·중고거래사이트에서 정품의 절반 값에 팔았다. “신품을 구하기 힘든 모델이고 저렴한 가격에 AS도 해주겠다”는 말에 구매자들도 속아 넘어갔다. 일부 구매자가 짝퉁 골프채라는 사실을 알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범행은 계속 이어졌다.

범행이 꼬리가 밟힌 건 인천본부세관이 5월 등산용 스틱으로 기재된 A씨의 특송화물에서 골프채를 발견하면서다. 세관 등의 조사 결과 A씨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 254회에 걸쳐 골프채 가품 764세트를 밀반입해 약 3억원의 부당이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본부세관은 지난달 21일 A씨를 관세법과 상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다만 A씨 측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판매업자들로부터 가품을 정품인 것처럼 기망당해 골프용품을 구입한 피해자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줄지 않는 중국발 위조상품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 발(發) 지식재산권 위반 물품 반입은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대다수는 중국에서 들어온 상품으로 집계됐다. 2019년 6352건이던 중국발 위조상품 적발 건수는 2292건(2020년), 1008건(2021년), 4464건(2022년), 2730건(올해 10월 기준)으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단순 통관보류 결정을 내린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중국에서 들어오는 위조상품은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세관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마산세관은 영국의 유명 어린이 영어교재 위조품을 홍콩에서 정식 판매하는 제품처럼 속여 국내에 유통한 밀수업자를 적발했다.

송씨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한 위조 무선이어폰은 진품과 달리 커버에 상호 표시가 없었다. 이 제품은 블루투스 연결이 자주 끊겼다고 한다. 사진 송씨

송씨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한 위조 무선이어폰은 진품과 달리 커버에 상호 표시가 없었다. 이 제품은 블루투스 연결이 자주 끊겼다고 한다. 사진 송씨

수사당국은 중국발 위조 상품이 알리익스프레스를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3개월간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알리익스프레스 주문 제품 230만 건 중 1152건이 위조상품 의심 건으로 분류됐다. 이 중 408건이 현장 감정에서 지식 재산권 침해 판정을 받았다. 279건은 위조상품으로 의심돼 세관이 해당 브랜드 측과 위조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파리게이츠 골프가방, 타이틀리스트 골프가방, 나이키 점퍼 등을 위조한 가품 등이 적발됐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21년 광고에 속아 무선이어폰 위조상품을 샀다는 송혜주(31)씨가 대표적이다. 송씨는 중앙일보에 “3만원으로 가격이 저렴했고 인증도 있어서 믿었다. 포장 상자부터 외형까지 정품과 같았는데 뜯어보니 마크가 없었고 휴대전화와 호환되지 않았다”며 “환불이 어려워 썼지만, 곧 망가졌다. 이후론 알리익스프레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모(46)씨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정품의 3분의 1 값에 골프채 8개를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가품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16일 국회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민국 의원은 “블랙야크가 30만원에 파는 겨울 패딩 점퍼의 모조품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만∼3만원에 팔리고 있다”며 “국회의원 배지도 1만5000원에 올라와 있다”고 지적했다. 정무위원장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가품 비율이 0.015%다’라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질타했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한국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알리익스프레스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 보호 강화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한국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알리익스프레스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 보호 강화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계속되자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적재산권과 고객 보호 강화를 위해 향후 3년간 한화 1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한국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한국어 전용 지적재산권 보호 포털을 만들겠다”며 “구매 상품이 가품으로 의심되면 증빙서류 없이 100% 환불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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