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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만명 죽인 마약 진통제…美제약 오너家, 13조원 지키려 한 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으로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퍼듀 파머의 회장 리처드 새클러(78). 사진 프로퍼블리카 캡처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으로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퍼듀 파머의 회장 리처드 새클러(78). 사진 프로퍼블리카 캡처

마약 성분인 오피오이드로 만든 진통제 '옥시콘틴'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오너가(家) 새클러 가문의 운명이 또 한 번 심판대에 올랐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퍼듀 파마의 파산 합의가 적법한지 아닌지를 두고 심리에 들어가면서다. 옥시콘틴은 강한 중독성으로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피해자를 낳은 약이다. 리처드 새클러(78) 등 가족 구성원은 피해자와 합의하는 조건으로 퍼듀 파마의 파산을 신청했는데, 이를 두고 추가 소송을 피하고 재산을 지키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연방 대법원이 퍼듀 파마의 파산 계획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며 "대법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보도했다. 이날 열린 첫 재판에서 미 법무부와 새클러 가문 측 변호인은 2시간 동안 치열하게 씨름했다. WP는 "새클러 가문의 재산은 100억 달러(13조 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부를 지킬 수 있을지 결정된다"고 전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대법원 앞에서 옥시콘틴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대법원 앞에서 옥시콘틴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의 가족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새클러 가문의 흥망성쇠는 퍼듀 파마의 부침과 궤를 같이했다. 1950년대 유대계 출신 미국인 레이몬드·모티머·아서 새클러 삼 형제는 퍼듀 파마를 인수했다. 회사 규모가 커진 건 진통제·신경안정제의 판매량이 크게 뛰면서였다. 90년대에 이들은 오피오이드 성분으로 만든 진통제 옥시콘틴을 개발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판로를 넓혔다.

레이몬드의 아들인 리처드 새클러가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퍼듀 파마는 더 공격적인 로비와 마케팅을 펼쳤다. 미 식품의약국(FDA)에 중독성 등급을 낮춰달라고 로비하거나, 의사에게 접대하며 처방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 출시된 지 20년 만에 350억 달러(약 45조 9500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고 전했다.

오피오이드 성분으로 만든 옥시콘틴은 새틀러 가문에 큰 부를 가져다줬지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AP=연합뉴스

오피오이드 성분으로 만든 옥시콘틴은 새틀러 가문에 큰 부를 가져다줬지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옥시콘틴의 과잉 제조·유통으로 피해자가 속출했다. 수많은 환자가 오피오이드에 중독되거나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통계에 따르면, 옥시콘틴 때문에 사망한 인원은 2009년 이래 약 64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새클러 가문은 수천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새틀러 가문이 선택한 건, 피해자와 합의하면서 퍼듀 파마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2019년 회사에 대해 파산 신청을 하고, 경영권과 지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7년 동안 피해자들에게 60억 달러(약 7조 8000억원) 상당의 합의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약 2300건의 소송이 취하됐다.

2019년 새틀러 가문은 퍼듀 파마의 소유·경영권을 포기하겠다며 파산을 신청했다. AP=연합뉴스

2019년 새틀러 가문은 퍼듀 파마의 소유·경영권을 포기하겠다며 파산을 신청했다. AP=연합뉴스

2021년 파산 법원이 새클러 가문의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새클러 가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파산법 11조의 '부동의 제3자 면책권'에 따르면 집단 소송에서 합의를 이루고 파산한 경우, 피고는 앞으로 추가 피소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옥시콘틴 피해자들과의 합의문에는 "더이상 새클러 가문에 소송을 걸 수 없다"는 취지의 조항이 담겼다.

결국 법무부는 새클러 가문에 지나친 면책권이 부여됐다고 주장했다.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새틀러 가문이 옥시콘틴으로 부를 축적한 점을 고려할 때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는 취지다. 향후 대법원이 법무부 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새틀러 가문의 '재산 지키기' 전략이 실패할 수 있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지난 30~40년 동안 대법원까지 간 파산 사건 중 파급력이 가장 큰 사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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