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인간이잖아, 그럼 지지마”…‘필라델피아 좀비들’ 퇴치법

  • 카드 발행 일시2023.06.05

💊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마약 펜타닐과 좀비소설의 고전 『나는 전설이다』

아마 이런 동영상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회색으로 가라앉은 스산한 거리를 상체가 90도로 꺾인 사람들이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비틀거리며 걸어 다닙니다. 한결같이 멍한 표정에 초점 없는 눈동자, 자세히 보면 입가에 침까지 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면 “실제로 어딘가에 좀비라도 나타난 것은 아닌가?”라며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기괴한 동영상은 미국의 유서 깊은 도시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애비뉴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필라델피아 좀비’ 정도를 처넣으면 여러 개가 뜹니다. 펜타닐이라는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이들의 모습이죠.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원래 펜타닐은 의료용 진통제로 개발된 약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진통제 가운데 가장 효과가 강력한 합성 오피오이드로 꼽힙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물을 찾아왔는데, 대표적인 천연 진통제로 ‘아편’이 있습니다. 아편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의 신체에 작용하는 약들을 통틀어 ‘오피오이드’라고 하고요. 펜타닐은 화학적으로 합성했고 아편처럼 작용한다고 하여, ‘합성 오피오이드’라 불리는 약물군에 속합니다. 마이크로그램(µg) 단위의 극소량만으로도 거짓말같이 통증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내다보니 말기암이나 ‘신체 고통의 끝판왕’으로 꼽히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겐 필수약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이 무시무시한 중독성으로 인간을 망가뜨리기도 하는 거죠. 그냥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때까지 뭉개버리는 겁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래서 언제나 죽음입니다. 처음엔 아주 적은 양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의 특성상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게 되고, 마침내는 치사량 이상을 복용한 끝에 죽음을 맞는 거지요. 이쯤 되면 인생의 아이러니, 어리석은 인간 세상의 은유 아닐까요?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을 탐닉한 끝에 더욱 뜨거운 고통의 불지옥에 떨어져버린 신세니까요. 도대체 펜타닐은 우리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길래 그렇게도 강력한 중독성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펜타닐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책을 권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