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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에 10년 갈취당한 발달장애인…돈 지켜줄 '집사'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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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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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부모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자립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자녀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자립 능력 지표 중의 하나가 금전 관리 능력이다.

이런 발달장애인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곳이 생겼다. 국민연금공단이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재산 안전 관리 서비스'가 그것이다.

연금공단은 지난해 5월 120명의 발달장애인의 재산 16억원을 위탁받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정경화 장애인사업기획부장은 "발달장애인은 금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사기·갈취 등 위험에 취약한 점을 고려해 이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발달장애인의 일종의 집사 역할을 한다. 돈을 맡아서 안전하게 보관할뿐더러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한다. 맡기는 돈의 액수에 제한이 없다. 정부 예산(3억6000만원)을 지원받아서 시행하는 사업이라서 수수료가 없다.

71세 발달장애인은 10년간 여동생이 통장을 관리하면서 돈을 갈취당했다. 기초연금·국민연금·장애수당 등을 받았는데, 동생이 그걸 다 써버렸다고 한다. 그는 연금공단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갈취와 착취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또 다른 발달장애인은 복지시설에 오래 거주 직접 금전 관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시설에서 나오게 됐고, 연금공단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걱정을 덜게 됐다.

연금공단은 발달장애인이나 부모와 함께 개인별 재정 지출 계획을 세운다. 학비·생계비·취미생활비 등의 지출 계획을 짜서 정해진 시점에 장애인의 통장에 입금해 준다. 지난달까지 재정계획에 맞춰 2400회 입금해 사용을 도왔다. 변호사·회계사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위원회가 지출 계획의 타당성을 심의한다. 갑자기 돈을 쓸 일이 생기면 거기에 맞춰 돈을 보낸다. 병원비 같은 게 대표적이다.

돈을 거의 지출하지 않는 장애인도 있다고 한다. 수시로 추가 입금하는 사람도 있다. 16명은 적금식으로 입금한 덕분에 임대보증금·결혼자금 등을 마련해 목표를 달성했다. 다만 연금공단은 입금된 돈을 굴려주지는 않는다. 손실이 날 수도 있어서 아직 그리하지 않고 있다. 정기예금 이자 정도만 지급한다.

발달장애인이 돈을 쓰고 관리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려는 게 이 서비스의 목적이다. 부모 입장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다.

연금공단이 이 사업의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발달장애인의 90.7%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96.9%는 시범사업 참여로 재산을 더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답했고, 89.7%는 내년에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연금공단은 올해 대상자 120명에다 80명을 더해 시범사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이나 보호자는 국민연금공단(063-713-6008, 6009)과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1544-6912)에 문의하면 된다. 지금은 수도권과 영남지방에 집중돼 있는데, 내년에는 전국으로 확대하고 가족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런 재산 위탁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 치매 환자, 요양원 장기거주자, 요양병원 장기 입원환자 등이 그들이다. 연금공단은 발달장애인 대상 시범사업의 효과를 좀 더 평가해 사업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탁받은 돈을 운용해서 불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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