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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의 맞수가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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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제사회를 하나의 주식시장으로 치자면 중국은 블루칩 중에서도 블루칩이다. 연일 상한가니 그럴 만도 하다.

막강한 경제력은 구문일 테니 제쳐 두고 우선 국제정치만 보자. 6자회담에서 중국은 중재역이라는 조연에서 회담을 주도하는 주연급 배우로 올라선 지 오래다.

11월 3일부터 사흘 동안은 아프리카 대륙이 통째 중국으로 옮겨 왔다. 아프리카 전체 53개국 가운데 48개국의 정상 또는 고위 관리들이 중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아프리카 협력포럼'은 '중국 역사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로 기록됐다. 10월 30일부터 이틀간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의 정상이 모조리 중국 남부 광시(廣西) 장족(壯族) 자치구의 수도 난닝(南寧)에 모였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가 이처럼 한 대륙의 거의 전부, 거대 동맹의 수장 전부를 한꺼번에 안방으로 불러모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고작 아프리카 정상 약간 명을, 그것도 이들이 중국 일정을 마친 뒤에야 서울로 초청할 수 있었을 뿐이다.

18일부터 이틀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은 단연 돋보였다.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이 나란히 후 주석을 공항에서 맞았다. 대단한 파격이다.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하노이 선언'에도 후 주석의 정치 철학인 '조화사회(인민이 모두 평등하게 잘사는 사회) 건설' 개념을 확장한 '조화로운 아태 건설'이 포함됐다. 이들 모두 중국이 미국 버금가는 대국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데 과연 그럴까.

시선을 중국 안으로 돌려보자. 6월 3일 오후 1시30분 안후이(安徽)성 페이둥(肥東) 군용비행장을 이륙한 난징(南京) 군구 소속 공군 조기경보기가 3시40분쯤 동부 광더(廣德)현에 추락해 탑승자 40명 전원이 사망했다. 군당국이 사고 직후 발표한 공식 사고 원인은 '여러 차례의 결빙구간 통과로 인한 비행기 결빙이 빚은 조종 불능'이었다. 그러나 정작 사고의 부수적 원인이 더 충격적이다.

우선 정원 초과다. 이 조기경보기의 정원은 29명이다. 둘째는 안전띠 미착용이다. 조사 결과 27명이나 안전띠를 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객기 같은 대형기에서도 안전띠 착용은 상식이다. 그보다 작은 수송기에서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균형 유지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블랙박스 분석 결과 비행기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많은 사람이 한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비행기 추락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랄 일은 그 다음이다. 사고 직후 난징 군구는 사망자 수를 29명이라고 허위 보고했다. 정원 외 탑승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블랙박스 기록도 1분3초 분량을 삭제했다.

이런 사례가 비록 미세하고 지엽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 정부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사례일 수 있다. 규율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인민해방군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규율 위반이 버젓이 저질러졌다면 정부 내 다른 핵심 조직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중국인은 규율을 공동체의 약속이 아닌 간섭으로 여긴다. 따라서 관리자가 없으면 가차 없이 규율을 어긴다. 이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거나 심지어는 이익을 봤다고 생각한다. 늘 규제를 당해온 탓이다. 정부는 더욱 강력한 관리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제 그럴 때는 지났다. 전 세계로 국력이 뻗어나가는 판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자율을 줄 때 책임과 역량이 살아난다. 이때에야 비로소 중국은 미국의 맞수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진세근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