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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롤’ 수차례 실현한 페이커, 인기는 조던·메시 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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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10면

[위상 높아진 e스포츠] 레전드가 된 스타들

이상혁, 임요환, 장재호(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상혁, 임요환, 장재호(왼쪽부터 순서대로)

지난 9월 22일 중국 항저우 공항에는 수백명의 팬들이 몰렸다.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LoL) 종목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한 페이커(Faker) 이상혁(27) 선수를 보기 위해서다. 아시안게임에서 대부분의 종목 입장권 가격이 50위안(약 9000원)부터 시작하지만 e스포츠는 400위안(7만000원)에 달한다. 비싼 가격에도 구하려는 수요가 많아 아시안게임 종목 중 유일하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을 판매했다. 중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 티켓은 가장 비싼 24만5000원짜리가 온라인에서 300만원에 거래됐고, 경기를 생중계한 CGV 티켓 역시 2만8000원짜리가 8만8000원에 팔렸다.

페이커는 2013년 16세의 나이로 데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T1 소속으로만 활동하며 롤드컵을 4회, 이에 버금가는 국제대회인 MSI는 2회 우승했으며 한국리그(LCK)는 10번 제패했다. 최전성기인 2010년대 초반에는 “e스포츠계의 마이클 조던(당시 라이엇 게임즈 부사장이던 더스틴 벡)”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구미의 선수와 팬들은 ‘신(God)’이나 ‘메시’라고 불렀다. 2013년에서 14년까지 한국리그와 롤드컵, MSI를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당시 별명은 ‘불사 대마왕(The Unkillable Demon King)’. 상대 공격은 피하고 내 공격은 맞추면 된다는 ‘입롤(입으로만 하는 실현 가능성 낮은 플레이)’을 실제 게임에서 여러차례 보여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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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나왔으나 최근 롤드컵 우승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여전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내 프로선수 중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과의 계약에 따라 공식 언급은 없지만 국내외에서 50억~70억원 수준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21년 T1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중국리그(LPL)에서 2000만달러(당시 환율로 240억원)를 제시했지만 “한국리그에 남고 싶다”며 거절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현역 프로게이머 가운데 페이커와 비견되는 선수가 역대 최고, 최강의 워크래프트3 플레이어로 불리는 ‘문(Moon)’ 장재호(37)다. 최전성기로 꼽히는 2003~2006년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외계인’, ‘안드로 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요 대회가 열릴때마다 그의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으로 치고, 상대가 한 판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로 내기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의 워3 프로게이머 리샤오펑(Sky)과 함께 성화봉송에 참여했다. 2015년 제대 후에는 예전만큼 확실하게 상대를 압도하지는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2020년 월드사이버게임즈(WCG) 단체전 우승,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워3의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선수들이 서슴없이 자신의 롤 모델로 꼽는 선수가 스타크래프트의 ‘황제(Emperor)’ 임요환(43)이다. 약소 종족이던 테란을 골라 섬세한 컨트롤과 참신한 전략으로 승리를 일궜다. 2000년대 초반 마린(해병)과 탱크를 실은 그의 드랍십(수송선)이 떠오르면 그의 팬은 물론 상대 선수의 팬들까지 상반된 마음으로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국내외 대회에서 수십차례 우승하며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은 e스포츠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점이다. 대회에서 상금을 받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임요환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게이머들이 연봉을 받고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게임단에 들어가 정기적인 경기를 치르는 방식의 프로 리그 창설을 이끌어낸 데는 그의 지분이 컸다. SK텔레콤이 2003년 임요환을 끌어들여 T1 게임단을 창단할 당시 그룹 고위 관계자가 “농구로 치면 허재 정도 되느냐”고 물었다가 실무자가 “마이클 조던 급입니다”라고 답하자 바로 결제서류에 사인했다는 일화가 있다. 전성기 시절 그의 팬클럽 회원은 60만명으로 동방신기(90만명)에 이어 2위였다. T1 창단에 자극받은 당시 KTF 매직엔스는 박정석, 홍진호, 강민, 김정민, 변길섭을 영입해 ‘反 임요환’ 구도를 만들었고, 프로리그 활성화로 이어졌다.

이들은 게임만 잘했기 때문에 전설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프로게이머는 게임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뿌리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임요환)”, “크게 성공하면 자기관리가 무너지는 선수들이 허다하지만 주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을 딱 두명 만나봤다. 임요환과 페이커다(최연성)”, “연습경기를 신청해놓고 자다가 상대가 나타나면 일어나서 게임하고, 끝나면  다시 경기 신청을 누르고 잔다. 무서웠다(동료 게이머 박준)”는 말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뛰어난 실력 만큼이나 구설 수 하나 없는 자기관리도 공통점이다.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모습과 자기관리를 통해 ‘게임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들은 살아있는 전설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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