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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립 보장을" vs "콧줄 낀 중증 탈시설은 인권침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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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1월 28일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무각사에서 광주장애인부모연대 등이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광주시청 방향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뉴스1

11월 28일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무각사에서 광주장애인부모연대 등이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광주시청 방향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뉴스1

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 이른바 ‘탈(脫)시설’정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달 15일부터 22일간의 일정으로 제주에서 서울까지 발달장애인 탈시설을 요구하며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에 나서면서다. 하지만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탈시설은‘또 다른 인권침해’란 지적도 나온다.

탈시설 장애인 29명 "자립생활에 만족"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2년 전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하던 탈시설 정책을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하자는 취지다. 장애인 탈시설을 돕는 대신 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은 추가로 만들지 않는 내용도 담겼다. 2021~2022년 실시한 탈시설 로드맵 시범 사업에는 서울과 부산, 대구, 경북 경주, 전북 전주 등, 충남 서산 등 10개 광역·기초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에 전국에서 탈시설한 발달장애인은 551명이다. 서울이 31%로 가장 많다. 로드맵 시행 전 과거 탈시설한 인원까지 따지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서울만 1277명(지난 7월 기준)이다.

탈시설 놓고 찬반논란 가열

정의당 강은미(비례대표) 의원이 확보한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면접조사에 참여한 탈시설 발달 장애인 29명 모두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탈시설 후 서울의 한 지원주택에 사는 전재민(27)씨는 기자와 만나 “복지관에서 천연비누 만드는 일도 하고, 혼자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 조례가 중증장애인과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사형선고이며 장애의 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1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 조례가 중증장애인과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사형선고이며 장애의 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1

탈시설 후 학대나 건강악화 의심 사례도 

그러나 탈시설 현장에서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중증 발달장애인인 이모(32·여)씨는탈시설 뒤 함께 살던 보호자와 지난 6월 긴급 분리 조처됐다. 이씨는 자해·타해 행동을 제어해 줄 행동조절 약을 제때 먹지 못했다. 지원주택 안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는 다시 거주시설로 돌아갈 예정이다.

탈시설 이후 건강이 나빠져 숨진 장애인도 있다. ‘좋아’ ‘싫어’ 수준의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중증 발달장애인 김모(사망 당시 45)씨는 만성 변비에 따른 장 폐색증을 앓았다. 김씨는 수술을 했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주택 입주 1년 만이었다.

거주시설과 탈시설 정책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발달장애 중증도와 유형, 상황이 다른 만큼 시설 거주와 탈시설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음식물을 씹어 삼키지 못해서 콧줄(비위관)을 차고 있는 최중증발달장애인은 거주시설 요양서비스가 필요하다.

탈시설에 따른 예산 부담도 만만치 않다. 주택 마련비용과 활동지원사 인건비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작성한 ‘탈시설 비용 추계’ 자료에 따르면, 탈시설은 거주시설보다 장애인 한 명당 2배 가량 많은 돈이 든다.

11월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가 탈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11월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가 탈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탈시설 아닌 탈시설'화'가 바람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등은 탈시설이 유엔(UN) 장애인 권리협약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시는 ‘탈시설’이란 용어가 명시된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장애인별 여건에 따라 거주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탈시설화’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유럽 등 선진국도 무조건적인 탈시설을 권장하지 않는다. 덴마크 코펜하겐 장애인 거주시설 무스보어바이쉬드가 한 예다. 다중장애·발달장애 성인 32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 시설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용자 일정을 짜 똑같이 관리했는데, 지금은 이용자 개인 요구나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며 “이런 것 역시 탈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호흡기 낀 장애인이 "시설 나가겠다" 의사 표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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