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낀 장애인이 "시설 나가겠다" 의사 표현했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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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 조례가 중증장애인과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사형선고이며 장애의 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1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 조례가 중증장애인과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사형선고이며 장애의 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뉴스1

서울시가 탈(脫)시설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실태를 조사한 결과, 절반이 사실상 의사소통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탈시설이란 집단 거주시설을 벗어나 독립생활이 가능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이들 중증 장애인이 어떻게 시설을 나가겠단 의사를 표현했는지 퇴소 과정의 적절성 등에 의문이 제기된다.

탈시설 퇴소 과정 적절성 논란 #38명 중 20명이 의사소통 안돼 #시 "전장연, 탈시설 법인과 연관 #700명 자립실태 전수조사 할 것"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월 시 지원주택에서 생활하는 탈시설 중증 장애인 38명을 대상으로 첫 자립실태 (예비)조사를 했다. 38명 모두 2021년 4월까지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향유의집)에서 살았다. 이후 ‘향유의집’은 문을 닫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3년부터 5년 단위 ‘탈시설화 기본계획’을 세웠다. 서울시 지원주택은 민간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탈시설 장애인에겐 활동 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조사결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장애인은 9명(23.7%)뿐이었다. 나머지 20명(52.6%)은 ‘심하게 곤란’, 9명은 ‘곤란’으로 판단됐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거주시설부모회) 측에 따르면 이들 중엔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30점 만점) 결과 극히 낮은 점수를 얻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K-MMSE는 시계 같은 생활 물품 이름을 아는지, ‘100-7=?’ 수준 계산이 가능한지 등을 알아보는 검사다. 특히 이번 조사 대상 중 6명은 최중증 장애인으로 콧줄·소변줄·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데도 거주시설을 나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등이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연고 발달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등이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연고 발달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는 자립실태 조사를 탈시설 장애인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2009년 이후 탈시설한 장애인 700명이 대상이다. 8~9월 두 달간 거주시설 퇴소 과정 적절성과 주거환경, 건강실태, 탈시설 만족도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조사문항 작성엔 탈시설에 반대하는 거주시설부모회뿐 아니라 찬성 쪽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도 참여했다.

서울시는 전수조사를 통해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은 지역사회 내 정착을 돕고, 24시간 요양이 필요하면 전문 거주시설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지난 2월 예비조사 때 장애인 3명은 시설 재입소를 희망했다. 김주현 원광보건대 물리치료과 교수는 “자립이 불가능한 장애인은 안전한 시설에 머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시설 장애인 실태조사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탈시설 장애인 실태조사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이런 가운데 최근 전장연이 출근시간대 버스를 가로막는 시위를 한 것은 탈시설 전수조사와 연관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전장연 시위는 무분별하게 추진된 탈시설 사업 부작용이 드러나자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행동한 것”이라며 “탈시설이 중단되면 영향력 축소 등도 걱정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탈시설을 이끌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은 전장연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프리웰 이사진 7명 중 전장연 회원단체 대표 인사 4명이 포함돼 있고, 과거 ‘향유의집’이 폐쇄될 때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법인이사였다. 전장연은 지난 21일 논평을 내고 “탈시설은 국제적 흐름이자 인간의 존엄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며 “(서울시의 탈시설 실태조사는) 장애인을 다시 시설로 내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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