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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스님 타살근거 없다”지만…입적이유 여전히 물음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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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화재 사고로 입적한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에서 30일 오전 국가과학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화재 사고로 입적한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에서 30일 오전 국가과학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69)의 갑작스러운 입적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수사 당국이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화재 현장에서 자승 스님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들을 확보해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여기엔 자승 스님이 칠장사 요사채(스님들의 숙소)에 도착해 휘발유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통을 직접 옮기는 모습 등이 담겼다.

조계종 “소신공양으로 경각심 남겨”

30일 경기남부경찰청과 안성경찰서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전날 오후 3시11분쯤 검은색 승용차로 칠장사를 찾았다. 운전은 직접 했고, 동승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승 스님은 1시간쯤 후 차에서 휘발유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통 2개를 들고 요사채로 들어갔다. 화재가 있기 7분여 전인 오후 6시36분쯤 자승 스님이 요사채 문을 열고 잠시 밖을 내다본 것이 마지막으로 CCTV에 담긴 모습이다. 이후 오후 6시43분쯤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영상 화질이 높아 자승 스님의 행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담겼다”며 “외부인의 침입 흔적 등 특이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타살이나 방화 등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당시 사찰 내에는 자승 스님 외에 칠장사 주지인 지강 스님과 60대 경비원, 재무보살 등 세 사람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지만, 별다른 범죄 관련 혐의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승 스님 분향소에서 스님들이 추모 법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승 스님 분향소에서 스님들이 추모 법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불교조계종도 이날 “오후 자승 스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분신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계종 대변인인 총무원 기획실장 우봉 스님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또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계(스님이 입적 전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승 스님의 입적과 관련한 의문이 다 해소된 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타살설 등 여러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우선 입적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7일 교계 언론사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밝힐 만큼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입적 동기에 의문을 표하는 불교도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이날 칠장사를 찾은 한 스님은 “지난해 자승 스님이 죽음과 삶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우봉 스님이 30일 자승 스님 입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우봉 스님이 30일 자승 스님 입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승 스님의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 추정 메모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의혹도 남아 있다. 노란 종이 2장에는 입적 동기나 교계 및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대신, “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돼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은 소방 당국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현장 감식을 했고, 유서 추정 메모에 대한 필적감정도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정보원도 별도로 현장 점검에 나섰다. 국정원 관계자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테러와 안보 위험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의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 임기를 마친 후 종단 내에서 법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절대적 실권자라 불렸다. 한 불교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종단 내 그의 지위는 막강했고 최근이 최고 전성기였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정치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가 모두 자승 스님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봉은사를 찾아 자승 스님과 만나기도 했다. 강력한 1인 독주 체제가 막을 내리자 종단 안팎에선 술렁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조계종 내 큰 구심점이 사라졌고, 후계 구도가 뚜렷하지 않아 각 그룹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눌려 있던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정원도 현장점검…“테러여부 확인”

한편 자승 스님의 입적 소식에 동국대 교직원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승 스님은 2021년 출범한 동국대 건학위원회의(장학사업 추진과 학교 발전 계획 수립하는 기구) 초대 총재를 맡아 활동해 왔다. 동국대 관계자는 “학교 발전을 위해 애정과 질책을 아끼지 않은 큰스님이셨는데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동국대 이사장을 지낸 성우 스님도 “한국 불교계에 초석을 놓은 큰스님이 열반하셔서 황당하고 슬프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5일간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했다. 영결식은 3일 오전 10시, 다비는 자승 스님의 소속 본사인 용주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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