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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이 최고 전성기였다"…'조계종 실권자' 자승 입적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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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이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인도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대법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한불교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이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인도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대법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스님은 지난달 말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들, 중앙종회 의원 전체를 불러 종단운영 지침을 지시했다. 자주 있었던 일이다. 전 총무원장이지만 지금은 종단에서 법적인 지위가 없음에도 그가 절대적 실권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자승 스님 29일 입적해 조계종 권력공백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수시로 종단 운영지침 지시 #뚜렷한 후계자 없어 이합집산 예상

 한 불교계 관계자가 3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종단 내 그의 지위는 막강했고 최근이 최고 전성기였다”고 덧붙였다.

29일 입적한 자승 스님은 조계종단의 절대적 일인자로 꼽혔다. 2009년 총무원장에 당선될 때부터 계파를 통일한 최초의 인물로 주목받았다. 그 이전에 여당ㆍ야당으로 나뉘어 대립했던 4대 종책모임(화엄회ㆍ무량회ㆍ보림회ㆍ무차회)이 하나로 모여 자승 스님을 지지했다. 총무원장 취임 후에는 ‘불교광장’이라는 이름의 종책모임으로 종단 내 세력을 통일했다. 종단 내부에서는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에 자승 스님을 비유할 정도였다.

당선 당시 총 317표 중 290표의 지지율도 역대 최고였으며 연임으로 8년 동안 총무원장을 지냈다. 총무원장의 임기가 끝난 2017년 이후에도 강남 봉은사의 회주를 맡으며 막후에서 조계종단을 이끌어 속칭 '강남 원장(강남 총무원장)'으로 불렸다. 조계종의 입법 기관인 중앙종회 의원 대부분이 자승 스님 측 사람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자승 스님의 지지세력으로 이뤄진 상월결사를 결성해 결속력과 영향력을 다졌다. 상월결사는 2019년 위례 신도시의 천막 동안거를 시작으로 2022년 삼보사찰 천리순례, 올해 인도 도보 순례 등을 통해 결집력을 보였다. 자승 스님은 또 지난 3월 상월결사 대학생전법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불교계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이를 위해 151억원을 모은 것도 자승 스님의 힘이었다.

정치권과도 긴밀했다. 여야 대선 후보가 모두 자승 스님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봉은사를 찾아 자승 스님과 만났다. 3월 상월결사가 인도 순례 후 회항했을 때 윤 대통령이 축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불교계 관계자는 “개신교도였던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보수 정권과 대대로 가까웠다”고 전했다.

강력한 1인 독주 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조계종 내 후계 구도는 뚜렷하지 않다. 큰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각 그룹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눌려있던 반대 세력의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갑작스러운 입적으로 불교계는 충격을 받았다. 입적 이틀 전에도 자승 스님은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하는 등 죽음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스님은 “지난달에도 만났고 해가 바뀌면 공양도 자신이 내겠다 했다.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자승 스님으로 인해 덕을 본 사람은 아쉬워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계종이 내부 정화의 길로 가길 바란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조계종 스님은 “가장 우려되는 게 종단의 혼란이다. 종단 구성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방향으로 조속히 안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30일 브리핑에서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스스로 선택해 분신했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유서에는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이란 말이 없다. 납득할만한 이유도 적혀있지 않다.

조계종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5일간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했다. 영결식은 다음 달 3일 오전 10시, 다비는 자승 스님의 소속 본사인 용주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그러나 향후 부검 결과와 유서 필적의 진위 여부에 대한 국과수 차원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망 정황이 아직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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