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죄, “국가 질서 무너뜨린 국기 문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재판부 “경찰·청와대 사적 이용한 선거 개입 엄벌해야”

기소 3년10개월 만의 판결, ‘지체된 정의’는 더 큰 문제

2018년 울산시장 선거의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당사자들이 어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송철호 전 시장과 황운하 의원(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겐 징역 3년,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경찰 조직과 대통령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해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선거 개입 행위는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시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은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표적 수사했다. 당 공천이 확정된 날(3월)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청와대에 사전보고까지 됐다. 2월 40%였던 지지율은 두 달 뒤 29.1%로 곤두박질쳤다. 반면 송철호 후보는 같은 기간 19.3%에서 41.6%로 급상승했다.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며 95쪽의 ‘불기소결정문’을 남긴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 질서를 무너뜨린 국기 문란 범죄”라고 지적했었다.

재판부는 “송 전 시장과 황 의원, 백 전 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이 순차 공모해 김 전 시장의 측근을 수사하게 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며 “엄중한 처벌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공익 사유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당시 윗선이었던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은 검찰 기소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돼 법적 처벌은 면했지만, 도의적 책임까지 면죄부가 주어진 건 아니다. 특히 검찰 공소장에 이례적으로 35차례나 언급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어도 유감 표명은 해야 옳다. 이 모든 사건이 문 전 대통령과 그의 ‘절친’인 송 전 시장의 특수 관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 아니었다면 청와대가 무리하게 개입할 일도, 경찰이 하명 수사할 이유도 없었다.

판결이 나오기까진 우여곡절도 많았다. 수사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1년 반이 걸렸고, 검찰 기소부터 1심 선고까지는 3년10개월이 지체됐다. 수사 과정에선 ‘청와대 윗선’을 캐려는 수사팀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공중분해’ 시켰고, 사건 담당 판사는 기소 후 1년이 넘도록 공판을 열지 않았다. 지연된 정의는 사건 발생 후 6년 가까이 돼서야 1심에서 유죄가 밝혀졌다.

그새 송 전 시장은 4년 임기를 모두 마쳤다. 황 의원 역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전망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시간을 끌면서 내년 총선에 다시 출마할 수도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에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기를 훼손하는 선거사범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법원도 신속하고 정확한 재판으로 ‘정의의 지연’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