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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를 국가적 경험의 자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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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빗나간 막판 역전극…정보력·전략 부재 성찰하되

구축된 해외 네트워크는 계속 유지·관리해 가야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고배를 들었다. 어제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182개국) 투표에서 부산은 29표에 그친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는 119표를 획득했다.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 2 이상 득표에 성공하면서 결선 투표에서 판세를 뒤집겠다는 정부의 전략은 무위로 돌아갔다. 역전극에의 국민적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컸다. 윤석열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부산 시민과 국민을 실망시켜 정말 죄송하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이다”고 사과했다.

애당초 비밀투표여서 예측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상을 훨씬 밑도는 성적표를 받은 당국의 정보력 부재는 뼈아프다. 이달 정부 자체 예측에선 표차가 17표 안팎으로 줄었다는 시나리오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 당일엔 “결선 투표를 위해선 기적을 바라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판세 분석과 보고가 정확했는지 의문이다. 투표 직전 최종 홍보 영상을 두고선 ‘부산’이라는 핵심 메시지가 빠지고 연예인 일색이라는 뒷말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 때 국가사업으로 지정(2019년)되고도 유치전에 지각 시동이 걸린 점도 짚어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만인 지난해 7월 민관 합동 유치위원회가 꾸려져 추격이 시작된 반면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021년부터 사활을 걸고 유치전을 진두지휘했다. 네옴시티 1차 완성과 겨울아시안게임(2029) 유치를 시작으로 엑스포(2030)를 거쳐 월드컵축구대회 및 여름아시안게임(2034) 개최로 이어지는 ‘포스트 오일’ 국가 부흥 플랜과 왕위 계승이란 치밀한 그랜드 전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나간 것이다.

실패와는 별개로 지난 17개월간의 민관 총력전은 한국 국가 브랜드와 ‘도시 부산’의 경쟁력 강화라는 성과를 낳았다. 글로벌 스마트센터 지수(SCI)에서 부산은 세계 77개 주요 도시 가운데 15위에 올랐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 다음이다. 뒤늦게 뛰어든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분초를 아끼지 않은 외교 노력은 아프리카와 남미를 포함한 네크워크 강화의 촉매가 됐다. 유치위원회는 500여 일간 지구 495바퀴를 돌며 3470여 명을 만났다. 윤 대통령도 잇따른 정상외교를 통해 홍보의 최전선에서 뛰었다. 잘 유지·관리해야 할 국가의 자산이다.

6대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섰던 재계는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을 확대한 계기”(대한상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당장의 실망은 크더라도 국제적 무대에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소중한 자산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정부는 냉혹한 실패를 철저히 복기·반추해 전략적이고 치밀한 외교의 노하우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