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기대 못 미친 대통령실 재편…참모진, 쓴소리 주저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1년 반 국정 난맥상에도 ‘보좌의 쇄신’ 안느껴져

대통령도 고언에 귀 열고 인재 폭넓게 써야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대통령실을 재편했다. 신설한 정책실장에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을 임명했다. 정무(한오섭)·시민사회(황상무)·홍보(이도운)·경제(박춘섭)·사회(장상윤) 수석도 교체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 ‘슬림화’를 약속하며 폐지했던 정책실을 되살린 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비롯한 정책들을 놓고 혼선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 이어 부산 엑스포 유치마저 실패하면서 국정 장악력에 빨간불이 커졌다. 총선도 넉 달 앞인 만큼 컨트롤타워를 재편할 필요가 시급했다.

고심 끝의 재편이겠지만, 민심의 눈높이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1년 반 대통령실의 성적표를 매긴다면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17개월 동안 청문보고서 없이 20명 가까운 장관급 임명을 강행할 만큼 부실한 인사 검증과 수직화된 당정 관계, 전혀 존재감 없던 정무 기능 등 일일이 꼽기도 버거울 정도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수장으로 책임이 적지 않은 김대기 비서실장이 유임됐으니 쇄신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정국을 폭넓게 조망하면서 정무적으로 긴요한 조언도 해야 할 자리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에서 김 실장 스스로의 성찰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인사’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대통령실은 서울대 나온 50대 남성 검찰·경제 관료(서오남)나 이명박 정부 출신이 다수로, 대통령이 ‘예스맨’들에게 포위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3실·8수석 체제로 바뀐 이번 조직 재편에서도 대통령실은 김대기 비서실장, 조태용 안보실장에 더해 이관섭 정책실장까지 컨트롤타워를 모두 수직적 명령 문화에 익숙한 관료 출신으로 채웠다.

반면에 자기 편의 약점을 지독할 만큼 혹독하게 검증하는 ‘레드팀(Red Team)’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니 대통령 입맛에 맞는 보고만 올라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판단이 양산돼 온 것 아닌가. 예상을 뛰어넘는 큰 격차로 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부터 부산 엑스포 유치 참패에 이르기까지 현장과 거리가 먼 대통령의 오판이 이어진 것은 대통령이 ‘예스맨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개편을 계기로 국정 기조를 대대적으로 쇄신하고 폭넓게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같은 사고방식의 ‘내 편’만 쓸 게 아니라 반대 진영에 있었더라도 합리적 인재라면 기용하는 유연성이 절실하다. 또 주변의 조언을 잔소리로 일축할 게 아니라 민심의 창구로 존중하고, 겸손하게 경청해야 한다. 참모들도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레드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 아닌 제도에 충성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원칙 아니었던가.